크리스토퍼 리 옹(翁)이 별세했다. 그런데 이 위대한 배우의 부음기사들을 훑어보노라니 기묘한 게 눈에 띄었다. ‘스타워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그의 대표작으로 돼 있고 드라큘라 얘기는 한 줄도 씌어 있지 않았다. 세상에!
크리스토퍼 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당연히 드라큘라다. 그는 평생 드라큘라라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어쩔 수 없이 ‘영원한 드라큘라’였다. 흡혈귀 대장 드라큘라는 가상인물 가운데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영화화된 주제다. 벨라 루고시부터 잭 팰런스, 게리 올드먼, 제라드 버틀러를 거쳐 최근에는 루크 에반스까지 드라큘라를 연기했다. 그러나 리 옹이 연기한 드라큘라의 매력은 단연 발군이다.
그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무엇보다 드라큘라가 귀족(백작)이어선지 리 옹의 귀족적 풍모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어머니는 백작부인으로 연원을 따지면 샤를마뉴 대제(大帝)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카르디니 가문 출신이다. 이 가문은 프레데릭 바르바로사 황제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문장(紋章)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명문이다.
리 옹이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의 성이 ‘이씨’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씨들이 영문으로 이름을 표기할 때 Lee라고 쓰는 경우가 많고 보면 그를 ‘이 선생’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이 선생, 부디 좋은 데 가셨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24) 크리스토퍼 리 별세에 부쳐
입력 2015-06-1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