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삼성서울병원장이 감염내과 전문의라는 데 주목했습니다. 병원이 병원 내 직원과 의사, 간호사, 환자 등에 대해 충분히 파악해서 관리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방문객이나 보호자는 우리가 같이 파악을 해 추가적 전파가 없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지나놓고 보니 그런 부분에서 미흡한 면이 조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 14일 브리핑에서)
이 발언은 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감염 의심자 관리에 실패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부는 국가적 위기상황 관리를 대형 민간병원에 거의 전적으로 맡겼다. 병원은 그러나 정부의 ‘기대’와 어긋나게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국가와 민간병원의 희한한 ‘밀월’이 메르스 사태를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1차 명단 고작 158명=보건 당국과 삼성서울병원 등에 따르면 이 병원은 응급실에서 14번 환자(35)와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순차적으로 당국에 제출했다. 먼저 지난달 29일 14번 환자가 감염 의심자라는 사실을 통보받고 이튿날인 30일 전화번호 등이 빠진 대략적인 명단을 당국에 냈다. 상세 정보가 담긴 1차 공식 명단을 제출한 건 지난달 31일이다. 1차 명단에는 밀접 접촉자로 분류된 158명이 포함됐다.
병원은 이튿날인 1일 새벽 추가로 명단을 제출했다. 관리 대상자는 678명이 됐다. 당국이 14번 환자와 접촉한 응급실 환자·의료진 최종 명단(893명)을 제출받은 건 지난 4일이다. 14번 환자의 감염이 확인된 30일로부터 5일이나 지났을 때다.
삼성서울병원은 CCTV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려 여러 차례 나눠 접촉자 명단을 당국에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보건 당국은 인원을 투입해 공동으로 접촉자 파악을 하는 대신 병원 측의 작업을 기다리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접촉자 명단이 늦게 제출됨에 따라 관리도 늦게 시작됐다는 것이다. 병원 응급실에 있던 환자·보호자 가운데서 지난 6일 이후 격리 대상임을 통보받은 사람이 많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감염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지난 7일에서야 공개됐다. 14번 환자가 확진된 30일부터 무려 1주일 동안이나 접촉자를 관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그 사이 자신의 감염 가능성을 인지하지 못한 응급실 방문객과 체류자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새로운 감염 경로를 만들어냈다.
◇손 놓고 있던 보건 당국=더욱이 여러 차례 나눠 제출된 893명 명단은 메르스 전파를 막기에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병문안객이나 보호자가 빠져 있었던 것은 물론 137번 환자와 같은 비정규직 이송요원도 누락됐다. 병원 소속 의사인 138번 환자도 자가 격리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비정규직 직원, 환자 동행자, 병문안 온 방문자 등이 상당수 누락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삼성서울병원의 자체 조사 결과와 명단 관리 정확성이 떨어져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서울병원은 “환자와 병원 직원을 제외한 문병객에 대해서는 우리가 파악할 의무가 없다”며 “규정을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보건 당국은 병원이 문병객 등까지 아울러 파악해줄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문은 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 접촉자 파악 등 방역 업무를 전적으로 맡겼는가다. 당국은 평택성모병원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했었다. 평택성모병원에는 당국의 역학조사관이 직접 나가 밀접 접촉자를 분류했다.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 관련해서는 ‘명단을 제출받았다’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평택성모병원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역학조사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이와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은 “삼성서울병원에 전권을 맡기는 건 부적절하고 정부와 서울시가 참여하는 특별대책반이 업무를 총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권을 맡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병원 측도 “단독으로 한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방역 당국과 협의해 진행했다”고 밝혔다.
보건 당국과 삼성서울병원은 부분 폐쇄를 놓고 사전 조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밤 민관합동 태스크포스 즉각대응팀이 즉각적인 대응조치를 요구하자 병원은 30분도 채 안돼 ‘부분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접촉자 관리에 한 차례 실패한 보건 당국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다시 실패한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병원 안에서는 메르스의 전염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목격했으면서도 삼성서울병원의 접촉자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방역 관리 실패가 보건 당국 차원을 넘어선 정부 전체의 실패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지난달 말부터 메르스 사태는 이미 복지부 차원에서는 관리가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도 복지부의 인력과 영향력만으로는 어려웠다는 얘기다. 한 전문가는 “컨트롤타워가 또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라면서 “다른 부처의 인력을 동원해서라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철저한 역학조사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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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5 09:33 수정 2015-06-15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