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미 로비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뿌리가 깊다. 일본 정부·기업이 미국 정치권에 거액의 후원금을 안기고 각종 통상 실리를 챙겨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우리 정부도 법적으로 허용된 대미 로비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용미론(用美論)’이 대두됐다.
일본의 최근 대미 로비는 한국과 뗄 수 없는 과거사 문제까지 이슈로 삼고 있다. 14일 국민일보가 입수한 미 법무부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자료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초대형 로펌들을 고용, 제2차 세계대전 등 과거사 문제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아베 신조 정부가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등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데에는 이런 대미 로비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호건로벨스가 미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 중이라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입법·정책적 이슈’ 가운데에는 일본이 좀체 사과하지 않는 위안부 책임 문제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외교원 김태환 교수는 “일본의 대미 로비는 일종의 역사수정주의 노력”이라며 “당연히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독도 문제와 센가쿠 열도 문제 등에서 전방위 홍보 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역사 문제에서 일본인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은 아베 정부가 내건 경제부흥 및 ‘보통국가화’를 뒷받침하는 요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역사 수정을 위해 로비 전문 로펌들이 고위급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게 하고 있다. 일본에 고용된 헥트스펜서는 지난해 12월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과 직접 면담했다. 이 시기는 일본 총선을 앞두고 아베 총리의 위안부 발언 등 역사인식에 대한 비판이 한국은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크던 시기였다.
베이너 의장은 지난 3월 “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첫 번째 일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한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를 정식으로 초청했다.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연설에는 끝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언급되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에는 일본의 대미 로비가 있다는 시각이 컸다. 포브스 등 미국 언론은 “하원의장이 일본 총리에게 아부했다” “일본만큼 워싱턴에 돈다발을 뿌릴 수 있는 나라는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은 로비가 실패로 돌아가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를 계속한다. 일본의 대미 로비 등 공공교 예산은 우리 정부의 8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품을 들인 노력은 미국 내 정치 지도자들의 친일 발언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과거사 책임은 한·중·일 모두에 있다”고 파문을 일으킨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도 대미 로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일본의 접근법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기보다 우리도 정교한 ‘지식외교’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
日 “우리 입장 대변해 달라”… 美 고위급 인사들 적극 접촉
입력 2015-06-15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