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3차 유행 비상] 76번 환자 이송때 마스크 外 보호 장비 착용 안해

입력 2015-06-15 02:44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4차 감염’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3차 감염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구급차 운전자와 동승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바이러스가 3명을 차례로 거쳐 네 번째 사람에게 옮는 4차 감염은 메르스 최초·최다 발병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3차 감염 발생 이후 4차 감염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말하던 정부는 “(4차 감염은 발생했지만 병원 밖) 지역사회 감염은 없다”고 말을 바꿨다.

◇1번→14번→76번→133·145번=지난 10일 사망한 76번 환자(75·여)는 1번 환자(68)에게 감염된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35)에게서 바이러스가 옮은 것으로 추적됐다. 당뇨와 다발성골수증 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다음날까지 머물렀다. 14번 환자는 같은 곳에서 치료 중이었다. 같은 달 28일 퇴원한 76번 환자는 지난 3일 한 차례 더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외래진료를 받았다. 이후 낙상사고로 엉덩이뼈가 골절됐다.

이 환자가 4차 감염자인 133번(70), 145번(37) 환자와 접촉한 건 지난 5일과 6일이다. 5일에 골절상을 치료하러 사설 구급차를 타고 오후 4시쯤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133번 환자(70)는 이 구급차 운전자였고 145번 환자(37)는 동승한 이송요원이었다. 이들은 수술용 마스크만 쓰고 장갑 등 다른 개인보호구는 착용하지 않았다. 76번 환자를 골절 환자로만 알았다.

76번 환자는 강동경희대병원에 가기 전부터 고열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서 열이 38도에 달했다. 이 환자는 다음날 오전 9시쯤 건국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질 때도 같은 구급차를 탔다. 건국대병원에 가서야 격리 조치를 받고 7일 양성 판정을 받았다. 133번 환자와 145번 환자는 이날 업무에서 손을 떼고 자택 격리에 들어갔다. 각각 12일과 13일에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정부의 말’ 어디까지 바뀔까=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달 31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현재까지는 첫 환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환자”라며 3차 감염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3차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만약 발생하더라도 조기 진단해 더 이상 접촉자가 없도록 한 뒤 치료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뒤에 3차 감염자가 확인됐고, 4일에는 첫 3차 감염 사망자가 나왔다.

메르스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연쇄 감염이 우려됐지만 정부는 “아직 4차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만 고수했다.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지난 7일 “(3차 감염자인 76번 환자가 다녀간 병원들에 대해) 긴급하게 검역조사와 방역조사를 실시했다”며 “(이들 병원을 통한 추가 전파는) 우려하는 부분이라 철저히 대처해 최대한 막겠다”고 했다.

정부는 4차 감염이 되자 다시 말을 바꿨다. ‘감염 차수’보다는 ‘지역사회 감염’ 여부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입장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감염이 사람을 넘어갈수록 ‘2차 감염’ ‘3차 감염’ ‘4차 감염’ 이렇게 표현해도 큰 문제는 없다”며 “지금 전문가들은 ‘병원 내 전파냐, 지역사회 감염 발생이냐’로 환자를 주로 나눈다”고 말했다. 아직 지역사회 감염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현재까지 정부 입장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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