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고랭지밭에 배추와 무 등 농작물은 흔적도 없고 검은 비닐만 씌워져 있었다. 해마다 굵은 씨알의 무와 배추를 길러내던 기름진 밭은 산들바람에도 모래먼지가 날릴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농민들이 봄농사를 위해 비닐을 씌워놓고, 땅을 고르는 작업을 했지만 가뭄으로 파종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무와 배추가 싹을 틔운 밭은 뜨거운 뙤약볕에 잎사귀가 타들어가는 모습이 확연했다. 농민들은 “애써 심은 배추와 무를 살리려고 한 달 넘게 밭에 물을 주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곧바로 증발해 버려 역부족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지난 12∼14일 단비가 내린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다. 고랭지밭 곳곳에서는 농민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밭으로 나와 배추와 무를 심었다. 하지만 이 기간 고랭지 채소의 주산지인 강릉과 평창에 내린 비는 4∼5㎜에 그쳤다.
농민들은 또 다시 농작물이 말라죽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진부2리에 사는 김일동(54)씨는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고 해서 배추와 무를 파종하려고 했는데 소나기가 고작 10분 동안 쏟아진 게 전부”라면서 “지난달 39만6000㎡에 배추와 무를 파종했는데 모두 말라죽었다. 예년 농사에 500만원이 들어갔다면 올해는 1000만원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강원도와 충북 등 중부지역은 피해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14일 강원도에 따르면 자연강수를 농업용수로 충당하는 논 83㏊가 벼를 심지 못했고, 이미 심은 논 442㏊는 고사위기에 놓였다. 밭작물은 14개 시·군 3169㏊에서 시듦이 확산되고 있다.
강릉과 평창 등 고랭지 채소 재배농가는 아예 파종조차 못했다. 도내 밭 면적 3만2509㏊ 중 1만584㏊에서 파종을 못했고, 고랭지 무·배추 7200㏊ 가운데 33%인 2357㏊ 정도만 파종을 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도내 고랭지 배추와 무 생산량이 전국 여름철 무·배추 생산량의 98%를 차지해 오는 8월 전국적인 무·배추 파동까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충북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옥수수 생산지대인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는 바로 옆으로 남한강이 흐르지만 옥수수 잎이 말라가는 백화현상이 크게 번지고 있다. 6쪽 마늘로 유명한 단양군 일부지역에서는 마늘이 잇따라 말라죽어 수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 ‘메르스 여파’까지 더해져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충북 보은에선 오이 수확이 한창인데 농민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오이밭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하루 품삯도 6만원으로 작년보다 1만원 올랐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옥천군은 상황이 더 어렵다. 옥천군 관계자는 “예년엔 공무원 일손 돕기나 대학생 봉사활동이 큰 힘이 됐는데 지금은 메르스 때문에 외부인력 지원이 완전히 끊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11일부터 발전 댐의 여유 물량으로 다목적댐의 용수공급 부담을 덜어주는 긴급대책을 가동했다. 화천댐 등 발전용 댐이 내보내는 물을 하류 지역 용수공급에 이용해 소양강댐·충주댐 등 다목적댐 용수공급 기한을 늘린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 상태라면 25일쯤부터 농업용수 감축에 들어가야 하지만 발전댐을 이용하면 다목적댐 물 비축 시간을 모내기철인 7월 15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창·보은=서승진, 홍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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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가뭄, 메르스 공포… 들녘은 흙먼지만 작물 태반이 고사
입력 2015-06-15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