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완패… 물 건너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임기 내 타결

입력 2015-06-15 02:0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미 하원에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당내 반대 여론을 주도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오른쪽)가 오바마 대통령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이자 중국 봉쇄를 염두에 둔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의 주요 수단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중대 위기를 맞았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간곡한 지지 호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TPP 법안에 반대표를 무더기로 던짐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레임덕)’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 하원은 12일(현지시간) 오바마 행정부가 11개국과 진행 중인 TPP 협상의 신속한 타결을 뒷받침하는 무역협상촉진권한(TPA)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법안’의 핵심 연계 안건인 무역조정지원제도(TAA)에 대한 표결을 한 결과 찬성 126표 대 반성 302표의 압도적 차이로 부결시켰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찬성은 40명에 그쳤으며 14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TAA는 국제무역 활성화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의 이직과 재교육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는 등 법안 통과를 강력히 호소했으나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투표에 앞서 “패스트트랙을 늦추는 것은 미국인을 위한 더 좋은 협상을 따내기 위한 것”이라며 당내 반대투표를 사실상 주도했다.

미 하원은 TAA 안건을 부결시킨 직후 TPA 부여 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19표, 반대 211로 통과시켰다. TPA 법안은 가결됐지만 핵심 연계 법안인 TAA가 부결되면서 TPA는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공화당이 16일 다시 표결을 시도하기로 했지만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PP 협상에 찬성하는 공화당과 달리 민주당은 그동안 환경 및 노동자보호 조항 미흡 등을 이유로 TPA 부여 법안에 반대해 왔으며 이 법안의 연계법인 TAA 안건을 부결시킴으로써 TPA 부여 법안 자체를 저지한다는 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미 의회가 행정부에 TPA를 부여하지 않음에 따라 일본 캐나다 페루 베트남 등 11개국과의 TPP 협상 타결은 중대 위기를 맞게 됐다. 일본 등 주요 협상 참가국들은 TPA가 없을 경우 미 행정부와 협상을 끝내더라도 의회에서 다시 조정될 수 있는 만큼 TPA를 TPP 협상 타결의 필수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내년엔 대선으로 인해 동력이 없는 등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TPA 법안 통과는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며 “2017년 이후 선출된 차기 대통령이 다시 추진할 수 있지만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TPP는 중국의 경제력 부상에 위협을 느낀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온 ‘아시아 중시 정책’의 핵심 정책 수단이다.

TPP 협상 실패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위신 추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아울러 이날 핵심법안의 처리 실패로 집권 후반기인 6년차를 맞아 TPP 협상을 성공시킴으로써 정권의 업적을 남기려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큰 위기를 맞게 됐다.

특히 집권 2기 마지막 1년 반 정도를 앞둔 상황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아니라 집권 여당이자 ‘친정’인 민주당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어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이 이제부터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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