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그라운드 제로

입력 2015-06-15 00:30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격리자가 14일 기준 5000명, 확진 환자는 150명을 향해 간다. 대혼란의 출발지가 하필 중동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 청년이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고 했던 그 ‘약속의 땅’ 말이다. 그가 이 말을 하며 염두에 둔 분야는 아마 의료였을 거다. 그러니 대한민국 선진의료의 잠재적 구매자였던 후진국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르스 전문가가 방한해 “어쩌다 한국에서…” 혀를 차는 최근 상황은 민망하다. “아직 중동에 못 갔는데. 그래도 자가격리 덕에 거리는 텅텅 비었어요.” 조롱이 넘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상황이 악화된 이유를 두고 여러 진단이 나오지만 그 한복판에 삼성서울병원이 있는 건 분명하다. 삼성서울병원은 스스로 주장하듯 뚫린 방역의 최대 피해자이자, 가장 효율적인 바이러스 확산자 즉 ‘수퍼 전파 사고’의 가해자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그라운드 제로라고 할 만하다. 덧붙여, 1호 환자를 진단·치료한 게 삼성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고, 악화시킨 주인공이 전부 삼성서울병원인 셈이다.

그건 의도와는 무관한 일이었을 거다. 삼성서울병원이 그라운드 제로가 된 건 삼성서울병원이 삼성서울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움직인 주요 동력 중 하나가 그들의 유능함이었다는 뜻이다. ‘하루 응급실 내원자 200명, 외래 8000명’을 소화하는 삼성서울병원이 아니었다면, 고작 3일간의 바이러스 노출에 경기부터 부산까지 그처럼 빠르고 능률적으로 확진자가 퍼질 수는 없었을 거다. 14번 환자를 3일간 치료한 평택굿모닝병원에서는 환자가 딱 3명 나왔다. 삼성서울병원(14일 기준 71명)의 4%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6일간 병·의원 3곳을 전전하던 1호 환자를 발견·치료한 힘도 삼성서울병원의 유능함이었다.

그러니까 메르스 사태를 직시하려면 유능함이 사태를 악화시킨 아이러니를 이해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21세기 성장동력으로 추켜세운 한국 의료는 이번에 상식적인 수준의 방역 시스템조차 가동시키지 못했다. 이건 한번의 실수가 아니다. 보건당국이 분명하고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특정 방향으로 조직해낸 유능함이 만든 실패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삼성서울병원이 현재 위치에 오른 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전국의 환자 덕분이다. 각 분야 명의와 이들이 뽐내는 개인기, 컨베이어벨트처럼 막힘없는 질병 처리 시스템은 지난 세월 삼성서울병원(혹은 대형병원)이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며 축적한 노하우다. 이들의 활약 반대편에서 지방 중소병원과 동네의원은 망해가고 1,2,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는 뒤엉켜 엉망이 됐다. 의료쇼핑과 환자 떠넘기기도 일상이 됐다. 문제가 된 대형병원 응급실이 입원환자 대기소였다는 건 뉴스거리조차 아니었다.

오는 환자를 어쩌라고? 대형병원들은 항변한다. 그러게 말이다. 큰 병원이 오매불망 양극화를 원한 건 아니다. 그보다는 큰 병원이 경쟁력이라고 믿은 정부가 이런 상황을 부추겼다는 게 더 합당한 설명일 거다.

우리는 삼성서울병원이라는 일류를 공짜로 얻은 게 아니다. 의료의 실핏줄을 막은 대가로 고작 몇 개의 대형병원을 건진 것이다. 해외서 삼성전자 광고를 보며 그랬듯, 언젠가 중동의 한국 병원 간판을 보며 모두 애국자가 되는 잠깐의 기쁨을 누려볼 수도 있을 거다. 한국인의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구나, 뿌듯해하며. 하지만 그게 다수의 생명과 건강을 사회적 비용으로 치른 대가라면? 그래도 원하는 게 큰 병원과 의료수출인가? 메르스 사태가 지난 뒤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이다.ymlee@kmib.co.kr

이영미 종합편집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