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메르스 초동 대응에서 국가의 역할이 빠져버렸고, 정부의 비밀주의만 있었을 뿐 국민에게 제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아 감염이 커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나서 유행되고 있다. 메르스의 전염력은 무섭다. 그러나 이 각자도생의 전염력은 더 공포스럽다. 4차 감염이 일어난지라 앞으로 수주 동안 산발적으로 환자들이 더 발생하겠으나 메르스 바이러스는 이윽고 잡힐 것으로 믿는다. 오히려 각자도생의 바이러스는 쉽게 잡히지 않을 테니 우려스럽다.
국민들은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린다. 시퍼런 대낮에 TV 화면에 멀쩡하게 나오는데, 그 속에서 300여명의 생명들이 몰살당하고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누구도 목숨을 걸고 구조하지 않는 가운데 물속으로 사라지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무기력하기만 했던 그 심정이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나도 당할 수 있다, 어디나 뚫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만들었다. 돈 많은 사람, 출세한 사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바이러스는 공격한다. 권력도 재산도 지위도 유명한 병원도 지켜주지 못한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보다는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더 신경 쓰는 게 역력해 보이니 더욱 기가 찰 지경이다. 이런 게 바로 생지옥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정부는 어떤 동기로든 비밀주의가 작용하고 정보를 나눠주는 것 같지 않다. 나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밖에 안 생긴다.
‘각자도생’ 현상은 사실 그동안 수없는 경고들을 무시하는 바람에 터져버린 것이다. 지나친 영리주의, 경쟁주의, 공공성 무시, 안전과 보건에 대한 책임 방기 등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각자도생의 생지옥이 심각해지기 전에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건 정부여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부디 정부가 정신 차리기만을 바란다. 부디 공공성을 회복하라. 국민 신뢰를 복원하라. 공공 신뢰 없이 각자도생의 바이러스는 치유될 수 없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각자도생이라는 생지옥
입력 2015-06-15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