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기] 조선의 전염병

입력 2015-06-15 00:10

조선시대 끔찍한 욕은 ‘염병할 놈’이었다. 염병, 즉 티푸스 계통의 돌림병에 걸리라는 저주다. 병에 걸리면 온 몸이 탈 정도의 고통을 겪으며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약이 없으니 가족들은 속수무책으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조선시대는 전염병의 시대였다. 돌림병이 몇 년에 한 번씩 돌며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적을 때는 몇 백명, 많을 땐 수십만명에 이르는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숨졌다.

지금은 퇴치된 ‘마마(천연두)’ 또한 당시에는 두려운 전염병 중 하나였다. 아이들 누구나 걸렸는데 10명 중 2∼3명은 세상을 떴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천연두를 일으키는 귀신에게 잘 보이겠다며 마마라고 높여 불렀을까. 염병과 마마 외에도 마진(홍역), 호열자(콜레라), 이질, 독감, 학질(말라리아), 문둥병(한센씨병) 등이 있었다. 학질은 추웠다 열났다를 반복시키는 지긋지긋한 병이었다. 지금도 ‘학을 뗐다’는 말이 있다. 질리도록 고통 받았다는 뜻인데 그만큼 오랫동안 낫지 않는 병이었다. 콜레라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했다. 182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했을 때 수십만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1895년에도 콜레라가 돌았는데 평양에서는 주민 90퍼센트 이상이 성 밖으로 피난했다.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뾰족한 대책 없이 맞는 전염병은 재난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숨지거나 한 해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평균 수명은 24세에 불과했다. 지금은 81세를 웃도는 수준이니 의학을 발달시켜 전염병을 물리쳐준 수많은 선각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메르스가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직 백신과 같은 적극적인 치료법이 없어 환자를 격리하거나 병동을 폐쇄해 잠잠해지길 바라는 수준이다. 보건 당국이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은 공군 원사의 혈청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치료법을 도입한다고 한다. 아울러 백신 개발에도 착수한다니 반갑다.

김상기 차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