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고비] 7명 vs 63명, 중동과 다른 ‘한국적 병원 환경’이 문제… 14번 ‘슈퍼 전파자’ 왜 나왔나

입력 2015-06-13 02:58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가 12일 4명 더 확인돼 126명으로 늘어났다. 추가 확진자 중 3명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이른바 ‘슈퍼 전파자(Super Spreader)’로 불리는 14번 환자(35)와 직간접 접촉을 통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체류한 지난달 27∼29일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것으로 파악됐다.

14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울타리를 넘어 지방의 다른 병원으로 감염을 확산시켰다. 이날 발표된 확진자 중 126번(70·여) 환자는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에 오기 전 사흘간(지난달 25∼27일) 입원했던 평택굿모닝병원에서 간병을 하다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1일 공개된 확진자 중 118번(67·여) 121번(76) 환자도 같은 기간 14번 환자와 평택굿모닝병원의 같은 병동에 체류했다가 옮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써 14번 환자가 감염시킨 이들은 삼성서울병원 60명, 평택굿모닝병원 3명 등 모두 63명이나 된다. 지금까지 발생한 국내 메르스 환자의 절반이 14번 환자로부터 비롯됐다. 무시무시한 전염성이다.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생한 메르스는 환자 1명의 평균 전염률이 0.6∼0.8명 정도로 알려졌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명을 감염시킨 게 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14번 환자는 이례적으로 60명 넘게 감염시켰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배출이 가장 많은 시기에 병원 응급실이라는 특수 환경에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림대 의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역학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았을 당시 폐렴과 호흡기 증상이 아주 심했고, 이런 상태에서 사흘간 응급실에 머물렀던 게 강한 전염력의 원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도 “대개 발병하고 5∼7일 후에 바이러스 분비가 가장 많고, 특히 폐렴이 심해지면 바이러스 분비를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대형병원의 열악한 응급실 상황은 수십명의 감염자를 낳은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된다. 이재갑 교수는 “일반적으로 호흡기 환자에겐 응급실에서 가래를 뽑는 등의 의료시술이 이뤄지는데, 이런 기관지 자극이 있을 경우 바이러스가 극심하게 뿜어져 나온다”고 지적했다. 메르스는 보통 침방울(비말)에 섞여 전파되지만 기관지 자극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에어로졸(공기 중 떠다니는 미세 침방울) 형태로 더 멀리까지 확산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흡사 ‘도떼기시장’ 같은 응급실에서 의료진·환자·보호자 등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의료기기·문고리·안전바 등을 만짐으로써 대량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14번 환자가 응급실 밖으로 나갔던 정황이 포착됐다. 응급실 밖에서 추가 감염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14번 환자가 입원 첫날(지난달 27일) 상태가 조금 양호해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고 응급실을 벗어나 일부 움직인 동선도 파악됐다”고 말했다.

한편 14번 환자와 30분 이상 ‘밀접 접촉’을 하고도 메르스에 감염되지 않은 이들도 있다. 평택굿모닝병원을 떠나 상경한 이 환자를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만나 삼성서울병원까지 이송한 서울소방재난본부 소속 119대원 3명이 그랬다. 이들은 14번 환자 확진 후 지난달 31일부터 자택에 격리됐다. 이들과 같은 출동 차량을 이용하는 야간 교대 대원 3명도 함께 격리 조처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 구급대원 6명은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지난 10일 격리에서 해제됐다.

국민안전처는 “첫 메르스 환자가 확인된 다음 날부터 전국 구급대원들에게 발열 등 의심 환자에게 출동할 때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토록 하는 등 119서비스의 감염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한 덕분”이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병원 안’과 ‘지역사회’라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119 구급대원들은 환자 이송만 했을 뿐 구급차 안에서 바이러스 배출을 늘리는 기관 자극 시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 정도 수준이라면 감염 환자와 ‘택시를 같이 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병원 안 감염’ 문제로 인식하고 지역사회로의 대규모 전파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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