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고비] 병원 명단 공개 그 후… ‘불안’은 덜었지만 ‘병원 포비아’ 커졌다

입력 2015-06-13 03:08
대전 서구 대청병원 관계자가 12일 방역복과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한 채 병원 1층 로비에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이 병원에는 이날 현재 77명의 환자와 보호자가 격리돼 있다. 대전=사진공동취재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 명단이 전격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부 병원은 치료에 협조했다 문 닫게 생겼다며 울상을 짓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그래도 알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원, 환자 줄어 울상=메르스 환자 발생·경유 병원 대부분은 사실상 ‘휴업’ 상태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로비엔 다섯 명이 동떨어져 앉아 있을 뿐이었다. 손소독제가 출입구를 지켰고 안내데스크에선 마스크를 무료로 제공했다. 의료진과 직원은 물론 환자, 방문객까지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맨얼굴을 찾기 힘들었다. 서울 중구 하나로의원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병원 인근 약국에서 근무하는 약사들도 모두 마스크를 썼다. 이 병원 옆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병원이 공개된 뒤 수술과 진료 예약 취소가 잇따라 환자가 절반 이상 줄었다”고 전했다.

경유 병원으로 공개된 서울 중구의 윤창옥내과의원은 지난 8일부터 자체 휴진에 들어갔다. 잠긴 병원 문 앞에는 “본원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격리와 신고를 하고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랐다. 진료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환자들의 불안을 덜어드리기 위해 13일까지 일주일간 자진 휴진한다”고 적힌 안내문이 나붙었다.

메르스 발생 병원과 가까운 병원들도 유탄을 맞았다. 서울 일원동의 한 내과의원 이모(60) 원장은 “인근 삼성서울병원에서 대거 확진환자가 나오면서 일대 소규모 병원까지 덩달아 환자가 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환자가 오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하다”며 “메르스 판정을 받는 환자가 나오면 2주간 병원 문을 닫아야 한다. 소규모 의원은 환자가 와도 안 와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엇갈린 시민 반응=명단이 공개된 병원을 꼭 방문해야 할 사정이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과도한 조치’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유방암을 앓는 아내의 보호자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전모(70)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열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메르스 환자 취급을 받았다. 3일 동안 밥도 못 먹고 고생한 아내가 오늘 격리조치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환자가 많은 병원인 만큼 감염 가능성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내일 메르스 감염이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시민들은 불안이 해소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모(57)씨는 “메르스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고 공포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정보 공개 덕에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대학생 표모(25·여)씨는 “최근 다녀온 병원에서 메르스가 발생했을지 몰라 찜찜했지만 명단 공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속이 시원해져서 다행이지만 지금도 감추고 있는 게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 늦고 미흡하지만 일단 환영=전문가들은 정부의 병원 명단 공개를 대체로 환영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는 발병 2주가 지난 뒤에야 의료기관에 명단을 공개했고 17일째가 돼서야 일반에 공개했다”며 “뒤늦긴 했지만 그래도 환자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용이해지면서 확산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도 “전염병 관리의 양 축은 방역체계라는 기술적 영역과 국민 불안 해소라는 정치적 영역”이라며 “양쪽 모두를 위해 병원은 물론 역학조사 결과나 관련 정보 일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단 공개가 병원 기피로 이어지면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 교수는 “환자들이 아파도 병원에 안 오면서 모든 대학병원 외래·입원환자들이 급속도로 줄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2차 피해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도 ‘병원에 가면 신종플루에 옮는다’는 얘기가 돌면서 아파도 병원에 오지 않은 환자가 늘어나 종식 선언 즈음에 각종 중증환자가 급증했던 사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민아 중앙대 보건의료사회학과 교수는 “정보 공개는 했지만 신뢰수준이 현저히 낮다”며 “초반에 숨기기 급급했던 모습과 뒤늦게 공개하면서도 지역을 잘못 표기하는 등 기초적인 부분에서 사소한 실수가 나온 탓”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정부가 두 번째 액션을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현영 의사협회 대변인은 “병원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종식시키기 위해 정부가 메르스 노출 상황이 정리돼 안전해진 병원 명단을 다시 한 번 공개할 필요도 있다”며 “소규모 병원들의 피해에 대한 지원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홍석호 심희정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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