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고비] “감염 우려 없다”더니… 경유병원 18곳 중 5곳서 확진자

입력 2015-06-13 02:02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정부의 ‘오판’이 또 드러났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지난 7일 메르스 발생·경유 병원들을 공개하며 “메르스 환자가 단순히 경유한 의료기관은 감염 우려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평택성모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처럼 환자가 대규모로 나온 ‘발생 병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안전지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주일도 안 돼 ‘경유 병원’ 5곳에서 잇따라 메르스 확진자가 나오거나 감염 정황이 드러났다. 정부의 오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국민의 불안을 줄이려 강조했던 말이 불신을 증폭하는 부메랑이 됐다.

◇안전하다던 경유 병원서 환자 잇따라=메르스 환자가 다녀간 병원을 정부가 처음 공개한 것은 지난 7일이다. 당시 공개된 24개 병원 중 18곳은 감염이 이뤄진 게 아니라 이미 감염된 환자가 찾아간 병원이었다. 정부는 감염 확산의 진원지로 꼽힌 2곳(평택성모병원·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는 ‘감염 우려가 사실상 없는 곳’이라고 했다.

정부의 단언은 이틀 뒤 뒤집혔다. 경유 병원에서 환자가 나왔다. 감염 우려가 없다던 서울아산병원 여의도성모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확인됐다. 서울아산병원(92번 환자)과 여의도성모병원(88번 환자)은 6번 환자를 통한 감염으로 조사됐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93번·94번 환자)은 모두 15번 환자에게 감염됐다. 이 병원에서는 8일부터 12일까지 4명의 환자가 나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 11일 이후 경유 병원인 평택굿모닝병원 환자 3명(118·121·126번)이 잇따라 나왔고, 평택 박애병원에서도 확실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119번 환자가 감염된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산발적인 경유 병원 감염은 매개자도 제각각이다.

◇또 잘못 짚은 정부, 왜=정부의 오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이 경유 병원들을 거쳐 간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각 병원은 소독 등 방역 조치를 이미 시행했다. 하지만 이미 다녀간 환자가 여러 명과 접촉한 뒤라 충분히 감염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정부는 이 가능성을 간과하고 국민 불안을 잠재우겠다며 섣불리 단언을 했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의 특수성도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 국내 메르스 감염 양상은 중동에서와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2m 이내에서 밀접히 접촉하지 않은 경우에도 감염이 이뤄졌고, 5∼10분 짧은 시간 접촉한 경우에도 옮았다.

우리 병원문화는 누구라도 좁은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상황인 데다 환자들이 병원을 자주 옮겨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는 중동의 유행 사례에만 근거해 이런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어느 병원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부족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는 “병원 중심으로 감염되는 질병 특성을 고려한다면 중앙정부가 강력하게 그 진원지를 통제해 나가는 정책을 펴야 했다”고 지적했다.

문수정 김판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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