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의 에모리대학병원은 지난해 피어볼라(fear-bola·두려움과 에볼라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 전체를 공포에 빠뜨린 에볼라 환자를 치료했었다. 남부의 하버드라 불릴 만큼 명문이며, 의료시설 또한 뛰어나다. 이달 초 에모리대에 다니는 친구 딸이 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휩쓸기 시작할 즈음이다. 정부 당국의 정보 공개 차단, 몇몇 지자체의 메르스 환자 시설 협조 거부, 일부 시민의식의 실종 등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친구 딸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여름 에볼라 퇴치를 위해 대학병원이 나섰다는 데 대해 대부분 대학 구성원과 지역 사람들이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지던데요. 우리가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와 위대한 싸움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대학 당국은 에볼라 환자 치료를 위해 격리 구역을 설정하고, 의료진도 감염될 위험이 있어 최대한 방역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고요. 대학 구성원들은 어떤 불평도 없이 대학 당국의 지침에 잘 따랐어요. 무엇보다 자세한 정보 공개에 놀랐어요. 오늘 환자 상태는 어떻고, 어떤 의료진이 들어갔으며, 치료 경과가 어떻다는 것을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알려줬는데 저절로 안정감, 신뢰감이 느껴지더군요.” 생명의 위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위대한 싸움을 누군가 해야 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병원 당국,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구성원들, 모든 상황을 공유함으로써 높아지는 신뢰감 등이 어우러진 것이다.
미국이 에볼라 퇴치를 마냥 잘한 것만은 아니다. 초기 미흡한 대처로 방역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지금 우리 정부처럼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 와중에 피어볼라를 잠재운 것은 전문가들의 냉정한 판단과 합리적 결정, 책임 있는 자들의 이성적 대응, 신뢰감 형성이었다.
정부나 일부 병원, 시민의식 속에선 아직 이런 것들이 조금은 모자란 듯하다. 낯선 것에 대한 공포감은 여론을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그러면 비(非)이성이 이성을 압도할 수도 있다. 메르스 공포가 아무리 크더라도 전문가와 책임 있는 집단,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이 깨어 있으면 너끈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낯선 공포를 이기려면
입력 2015-06-13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