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 공방] 국회·정부 정면충돌 피하기… 중재안 수용 압박도

입력 2015-06-12 02:15
정의화 국회의장이 11일 오후 자신의 집무실로 가던 중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다. 국회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등 법률안 58건을 정부에 이송했으나 국회법 개정안은 이송 목록에서 제외했다. 이동희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11일 위헌 논란에 휩싸인 국회법 개정안의 정부 이송을 또다시 보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방침을 분명히 한 만큼 국회와 정부 간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야당에 국회법 중재안 수용을 압박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입장이 워낙 강경해 예정된 충돌을 잠시 뒤로 미뤄둔 것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鄭의장 “野에 충분한 시간 줄 것”=정 의장은 국회 대변인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이 12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중재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고 알려왔다”며 “충분한 논의 시간을 주기 위해 이송을 보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충분한 논의 시간이란 표현에 비춰보면 정부 이송은 다음 주로 넘어갈 전망이다.

정 의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야당의 입장 선회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새정치연합은 정 의장 중재안에 대해 당초 ‘적극 검토’에서 ‘수용 불가’로 방향을 틀었다. 청와대의 반대 기류가 전해지면서다. 그러다 이날 “의장의 중재 노력을 살려야 한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 의장과 면담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에 대한 청와대 태도는 국회를 무시하고 국회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가치를 살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의장에 공감하고 같이 노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당초 의장실은 이날 오전 정부 이송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최종 확정된 건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정 의장 중재안은 국회가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청’했을 때 정부가 이를 ‘검토’해 처리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강제성의 수위를 낮춰 국회의 행정입법권 침해 논란을 털고 가겠다는 취지다.

메르스 확산, 경기 침체 등으로 흉흉한 민심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의장실 관계자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시행령 수정권한을 놓고 서로 싸우기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고 했다.

◇국회법 개정안 손 봐도 충돌 불가피=정 의장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법 개정안 정국은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국회의 시행령 수정·요구권을 명시하고 정부가 이를 처리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행정부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식의 자구 수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국회법 개정안이든, 정 의장 중재안이든 정부로 넘어가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이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 간 정면충돌은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 여권 내 당청 갈등, 계파 간 불협화음도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새누리당에선 이번 협상을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당 위신이나 체면은 손상되겠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야당과는 당분간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야당과 싸워야지 당청이 서로 총질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 의장은 지난달 29일 본회의를 통과한 58개 법안은 정부로 넘겼다. 담뱃값 경고 그림·문구 삽입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 등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