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이번주 고비] ‘녹다운 메르스 경제’ 살리기 응급처방… 사상 최저 연 1.5%로 인하

입력 2015-06-12 02:52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이병주 기자
한국은행이 11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은 계속된 수출 부진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소비가 전방위로 위축될 우려가 커지자 경기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특히 발생한 지 불과 20일 남짓 진행된 메르스 사태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과하다 싶게 소비심리를 냉각시켰다”고 할 정도로 이번 금리 결정의 돌발변수로 작용했다. 하지만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정된 상태에서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자본유출 문제를 통화 당국이 지나치게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수출 부진에 메르스로 녹다운 된 경제, 금리 인하로 대응=최근 실물경제지표는 당초 2분기부터는 바닥을 치고 상승할 것이라는 정부나 한은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5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0.9% 급락하는 등 올 들어 매월 감소폭이 커졌다. 산업생산은 3월(-0.5%)과 4월(-0.3%) 등 두 달 연속 줄었다.

그나마 내수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메르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백화점 매출액은 5월 1∼2주 평균보다 25% 줄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6.5% 감소했다. 대형마트 역시 지난달보다는 7.2%, 지난해보다는 3.4% 줄었다.

예상을 벗어난 부작용은 전체 경제성장에까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 총재는 “(지금 상황대로라면) 다음 달 발표될 수정 경제전망치는 4월 발표 때(3.1%)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성장률 2%대 하락 가능성을 시사했다. 통화 당국이 가계부채나 미국 금리 인상 등 중장기적 영향을 생각할 한가한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와의 쌍끌이 내수 살리기 계기 될 듯=금리 인하는 청와대·통화·재정당국의 메르스 파급 효과 차단 공조작업의 주요 고리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적인 면에서의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고 이겨내는 것도 메르스 사태의 완전 종식”이라며 “경제팀을 중심으로 해서 그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통화·재정 당국에 결단을 촉구한 시그널과 다름없었다. 최경환 총리대행은 10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불안 심리 확산이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 추가 경기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데 이어 11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로 재정 당국이 다음 달 초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

◇소비 진작보다는 부채 증가·자본유출 우려 목소리도=금리 인하는 통상적으로 소비활성화→판매 증가→투자촉진→소득증대라는 선순환 구조의 첫 단추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고용 불안, 비정규직 확산으로 금리 인하가 부채증가→소비침체→투자감소→경기부진→소득감소라는 악순환을 부채질하는 정반대 흐름을 이끌어왔다. 금리 인하 효과에 시장이 반신반의하는 이유다.

실제 가계대출은 4월 한 달에만 사상 최대인 10조원이 증가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지만 부동산 경기가 전반적인 내수경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 전체의 빚이 1100조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빚의 증가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켜 정부가 원하는 내수 진작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총 저축률은 36.5%로 1998년 3분기(37.2%) 이후 16년6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소득 정체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돈을 벌어도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가 소득을 늘리지 않는 한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소비 확대로 곧바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됐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자본 이탈 부분이다. 올해 안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상할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우리가 정반대로 금리를 내린 것은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 우려를 가중시킨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장기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유입액은 지금보다 18∼40%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하준경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로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금융감독 당국과 적극 협조해 가계부채 건전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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