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1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한 것은 계속된 수출 부진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소비가 전방위로 위축될 우려가 커지자 경기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특히 발생한 지 불과 20일 남짓 진행된 메르스 사태는 이주열 한은 총재가 “과하다 싶게 소비심리를 냉각시켰다”고 할 정도로 이번 금리 결정의 돌발변수로 작용했다. 하지만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정된 상태에서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자본유출 문제를 통화 당국이 지나치게 간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수출 부진에 메르스로 녹다운 된 경제, 금리 인하로 대응=최근 실물경제지표는 당초 2분기부터는 바닥을 치고 상승할 것이라는 정부나 한은의 예상에서 벗어났다. 5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10.9% 급락하는 등 올 들어 매월 감소폭이 커졌다. 산업생산은 3월(-0.5%)과 4월(-0.3%) 등 두 달 연속 줄었다.
그나마 내수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메르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백화점 매출액은 5월 1∼2주 평균보다 25% 줄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6.5% 감소했다. 대형마트 역시 지난달보다는 7.2%, 지난해보다는 3.4% 줄었다.
예상을 벗어난 부작용은 전체 경제성장에까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 총재는 “(지금 상황대로라면) 다음 달 발표될 수정 경제전망치는 4월 발표 때(3.1%)보다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사실상 성장률 2%대 하락 가능성을 시사했다. 통화 당국이 가계부채나 미국 금리 인상 등 중장기적 영향을 생각할 한가한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와의 쌍끌이 내수 살리기 계기 될 듯=금리 인하는 청와대·통화·재정당국의 메르스 파급 효과 차단 공조작업의 주요 고리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적인 면에서의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고 이겨내는 것도 메르스 사태의 완전 종식”이라며 “경제팀을 중심으로 해서 그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통화·재정 당국에 결단을 촉구한 시그널과 다름없었다. 최경환 총리대행은 10일 경제장관회의에서 “불안 심리 확산이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 추가 경기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데 이어 11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로 재정 당국이 다음 달 초 발표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
◇소비 진작보다는 부채 증가·자본유출 우려 목소리도=금리 인하는 통상적으로 소비활성화→판매 증가→투자촉진→소득증대라는 선순환 구조의 첫 단추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고용 불안, 비정규직 확산으로 금리 인하가 부채증가→소비침체→투자감소→경기부진→소득감소라는 악순환을 부채질하는 정반대 흐름을 이끌어왔다. 금리 인하 효과에 시장이 반신반의하는 이유다.
실제 가계대출은 4월 한 달에만 사상 최대인 10조원이 증가하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지만 부동산 경기가 전반적인 내수경기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 전체의 빚이 1100조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빚의 증가속도를 더욱 가속화시켜 정부가 원하는 내수 진작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총 저축률은 36.5%로 1998년 3분기(37.2%) 이후 16년6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소득 정체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돈을 벌어도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가 소득을 늘리지 않는 한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소비 확대로 곧바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가 됐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점은 자본 이탈 부분이다. 올해 안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상할 것이 확실시된 상황에서 우리가 정반대로 금리를 내린 것은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 우려를 가중시킨다. 세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장기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신흥시장으로의 자본 유입액은 지금보다 18∼40%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양대 하준경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로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금융감독 당국과 적극 협조해 가계부채 건전성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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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2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