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학창시절 맺어진 인연은 끌림이 강하다. 가족이나 친척 관계로 이어진 혈연 다음으로 유대가 깊다. 사회 친구에선 찾기 힘든 뭔가가 학교 친구에겐 있다. 개인적 차이는 있지만 초·중·고·대 동문회 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모임이 고등학교 동창회일 듯싶다.
박근혜정부에서 서울고 27회 동기 4명이 함께 장관으로 재임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별도 모임을 삼갔고, 국무회의가 열릴 때도 서로 데면데면했다고 한다. 학연은 우정과 추억으로 머물 때 아름답다.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홍대 출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취임 이후 산하기관 및 관련 단체에 같은 대학 출신들이 잇따라 기용되면서 극심한 분란에 휩싸인 예술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체육홍대부’란 얘기도 들린다.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기고 72회 동기인 노회찬 전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노 전 의원은 “잘 모르겠다”는 다른 증인들과 달리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총리로서) 전혀 적합하지 않다”며 친구를 비토했다. 황 후보자는 학도호국단 연대장으로, 노 전 의원은 유신반대 투쟁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가는 길이 달랐다. 삼성X파일 사건으로 검사와 피의자로 만난 악연이 있다지만 이 정도면 친구가 아니라 원수에 가깝다.
또 한명의 고교 동기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총리 인준에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원내대표는 청문회 이틀째 일부러 청문회장을 찾아 황 후보자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애증이 교차하는 친구 관계를 ‘프레너미(frenemy)’라고 한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다. 대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사석에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이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프레너미(frenemy)
입력 2015-06-12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