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따뜻함, 푸근함, 쉼, 인내다. 이런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가 나의 모든 허물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대신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의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비난까지 감수하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를 보면 죽음의 사자에게 끌려간 아이를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는 자기의 눈을 빼 가면서도 아이를 되돌려 받기 위하여 헌신적인 모성애를 실천한다.
그러나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아이를 지키려고 했던 엄마는 마지막에 자녀를 죽음의 세계로 놓아 보내주는 모습으로 변한다. ‘엄마라서’ 그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도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엾은 제 아이를 구해 주세요. 저의 기도가 당신의 뜻에 어긋난다면 듣지 마소서. 당신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눈물도 잊어주세요. 제 기도도 잊어주세요.”
아이를 옆에 두고 싶은 엄마의 사랑이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재조정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뜻이 항상 옳고 선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엄마’는 그녀의 목숨만큼 사랑하는 아이를 선뜻 내놓는다. 아이 없이 사는 것이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이를 보낸 후 엄마는 어떻게 살아갈까. 시계추가 떨어지는 시간의 멈춤 속에서 아이 없는 절절한 고통 속에서 말이다.
여성이 어머니로 변신하는 순간 또 다른 ‘새로운 인류’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되어 ‘새 생명’을 품에 안는 순간부터 한 여성은 아이를 위한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품에 안겼던 어린 핏덩이가 뿔난 사춘기가 되고, 자기가 잘난 줄 아는 20대를 거쳐 사랑 때문에 몸살을 앓다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야 안심한다. 그리고 손주를 자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 자식들은 그 즈음 얼굴의 주름을 보고서야 ‘인생 농사’라는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의 어머니는 항시 손끝이 갈라져 있었다. 아물 사이가 없던 어머니의 손은 가을걷이가 시작될 때부터는 피가 터져 나오곤 했다. 그러면 손을 꼭꼭 쥐고 있다가 일을 마친 저녁 호롱불 앞에서 만병통치약 같던 안티푸라민을 바르시곤 했다. 자식이 어찌할 수 없는 힘든 장벽을 만났을 때 하늘을 보고 ‘허허’ 웃으며 살아가라 하시던 어머니. 그러나 소리 없이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많이 배우시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에게는 한 생명을 기르는 생명 철학이 배어 있었다.
세상이 각박하다. 어머니가 그립고 어머니의 리더십이 그립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자기주장이 난무하는 시대다. 그 모두를 ‘내 탓’으로 돌리며 내 자식이니까 눈물로 마음속 깊이 끌어안고 걸어가는 ‘어머니 리더십’이 그립다. 어머니의 치마폭이 열두 폭이 더 되는 이유는 자식들과 가정의 모든 허물과 어려움들을 전부 덮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의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이 그 품으로 언젠가는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밤새 호롱불 아래서 탕아의 ‘새 옷’을 짓는 ‘어머니 교회’.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은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죽지만 죽지 않는다. 자식의 가슴속에 살아 계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죽을 수 없다. 자식의 십자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노재경 목사(예장합동 총회교육진흥원장)
[시온의 소리-노재경]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입력 2015-06-12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