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팔에서 지진을 경험한 뒤에는 ‘땅이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져버렸다. 꿈속에서는 이따금 내가 딛고 서 있는 바닥이 흔들리거나 눈앞에 늘어서 있던 건물이 종이 상자처럼 찢어지기도 한다.
머릿속에 지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그런 꿈을 꾸는 걸 보면 몸이 경험한 기억과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하필이면 나는 왜 그 시간 그곳에서 지진을 경험해야 했을까.
어느 영화에서 가브리엘 대천사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천사다. 나는 도시를 소금으로 만든 적도 있고 첫째 아들을 죽인 적도 있고, 기분이 내키면 한 여자의 영혼을 찢을 수도 있는데, 우주가 소멸될 때까지 너는 내가 왜 그러는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요즘처럼 청명한 날씨 속에서 산책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땅, 무너지지 않는 하늘’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보이는 가장 큰 호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연이 호의라든가 선의라든가 악의 같은 어떤 의도를 갖는 경우는 없다. 의도란 언제나 사람의 해석일 뿐. 아침이면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거나 사람에게 나중에 돌려받고자 하는 게 있거나 또는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자연이 사람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살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은 죽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고 존재하는 것이 사람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거나 원해도 자연이 혹은 우주가 사람을 돕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돕는 것은 사람이다. 그 많은 사소하고도 절박한 바람에 귀 기울이고 관여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 자연이나 우주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사람의 일, 자연의 일
입력 2015-06-12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