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샤론의 꽃 예수’ 89장(통 89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사무엘상 5장 1∼12절
말씀 :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은 법궤를 빼앗고, 돌아와서 아스돗에 이르러 법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습니다. 블레셋이 다곤의 곁에 여호와의 법궤를 둔 것은 블레셋이 믿는 다곤이 이스라엘의 여호와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났습니다. 다음날 일찍이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에 가보았더니,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아 있었습니다(3절). 이튿날에도 다곤이 또 엎드려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서 몸뚱이만 남아 있었습니다(4절).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째,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이었던 다곤 옆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놓아둔 모습은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블레셋처럼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를 생각해 우상 옆에 하나님을 모셔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자신의 다곤을 경배하면서 하나님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의 문제로 교회와 신앙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부의 문제란 무엇입니까. 우리시대의 다곤, 우상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다곤을 섬기는 사람들이 다곤의 신상 앞에 언제 나갑니까. 3절에 보면, ‘일찍이 일어나’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4절에 보면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도 매우 열심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상 앞에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바알 선지자들처럼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하면’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응답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심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 하늘로부터 불같은 응답이 있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역사는 블레셋의 우상 다곤이 두 번이나 쓰러지고, 깨어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6절에 보면 독한 종기로 아스돗 사람을 쳐서 망하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아스돗 사람들이 그제서야 이스라엘의 신, 즉 여호와의 손이 ‘다곤’을 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 줄 알고, 그 앞에 엎드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11절).
블레셋은 다곤이 무너질 때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곤이 무너지고, 깨어진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니까 가슴에 사무침으로(12절) 남는 것입니다.
기도 : 우상 앞에서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헛된 욕심이나 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최용태 목사(오곡감리교회)
[가정예배 365-6월 12일] 다곤 對 여호와
입력 2015-06-12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