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이지성 작가-‘당구 여신’ 차유람 “믿음 소망 사랑의 ‘3쿠션’ 성공했어요“

입력 2015-06-13 00:10
이지성 작가와 차유람 선수가 지난해 양가의 축복예배에서 성경 책 위에 손을 올리고 목회자의 기도를 받고 있다.
예비부부 이지성 작가와 차유람 선수는 20일 인천 한 교회에서의 예식 후, 결혼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봉헌할 계획이다. 차이에듀케이션 제공
이지성 작가와 차유람 선수가 올해 초 방문한 인도 델리의 선교지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차이에듀케이션 제공
두 사람은 하나님이 둘의 만남을 원하시는지 오랫동안 물었다. 신부와 신랑 측 가족은 두 사람의 신앙을 보고 교제를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양가는 둘을 축복해 달라고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오는 20일 하나님 앞에서 결혼 서약을 한다. 이지성(41) 작가와 '당구 여신' 차유람(28) 선수의 결혼 얘기다.

"사귀지도 않았는데 왜 세 번씩 헤어지죠?"

이 작가를 지난 4일 오후 서울 관악구 조원로 차이에듀케이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차이에듀케이션은 그가 인문학 봉사를 위해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에 이 작가의 이달 강연 19개가 취소된 뒤였다. 보름 후 결혼하는 예비신랑은 들떠 보였다. "저희는 교제도 하기 전에 세 차례나 헤어진 적이 있어요." 처음에 차 선수는 이 작가의 책 '리딩으로 리드하라'(2010)를 읽고 그에게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로 팔로잉을 했다.

"제가 오랜 시간 무명작가로 고립된 생활을 하다가 비로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무렵이었어요. 유명 연예인, 재벌가 3세, 유력 정치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세상을 배우고 싶더라고요. 그 전에 국민일보에서 유람님의 신앙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어요. 당시 매일 신문 6개를 읽었죠. 차 선수와는 트위터 쪽지를 주고받다 제가 먼저 만남을 제의했어요."

두 사람은 서울 마포구 홍대 근처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나기로 했다. 차 선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작가를 직접 대면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고 한다. "제가 약속시간에 40분 지각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이것저것 하다 늦은 거죠. 옷도 후줄근했죠." 연애 경험 없는 '모태 솔로'였던 차 선수가 누군가를 기다리기는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이날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이 작가는 “대화 중 참 따뜻하고 온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어떤 신비로운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요”라고 회고했다. 차 선수는 “어떤 남자의 고백에도 흔들린 적이 없었어요.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흔들렸어요. 그리워졌어요”라고 나중에 그에게 얘기했다.

두세 번 만난 뒤 차 선수는 중국에서 열린 국제당구대회에 출전했고, 돌아온 뒤 그에게 이별을 전했다. 이때 이 작가는 이은옥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인도 콜카타 빈민촌 학교를 찾아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을 비웠다. 몇 달 뒤 그의 꿈에 차 선수가 나타났다. “하나님이 제게 ‘유람이가 외롭고 힘드니 네가 잘 보살펴주렴’이라고 하는 것만 같았어요.”

이지성 “배우자 달라고 기도한 적 없습니다”

비몽사몽 중 그는 차 선수에게 트위터로 연락을 했다. “하나님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바로 연락을 했는데 유람님이 바로 회신을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제안했죠. 난 책 쓰느라 바쁘고 너는 선수로서 목표가 있으니 이제 교회 오빠와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요. 그랬더니 유람님도 ‘좋다’고 했어요.”

이렇게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제가 유람님에게 먼저 연락하긴 어려웠어요. 애정 표현으로 오해되면 또 만날 수 없게 되니까 정말 조심스러웠죠.” 두세 차례 만난 뒤였을 것이다. 겨울 무렵 차 선수가 북한산 자락에서 살던 그를 불러냈다. “작가님, 당분간 못 볼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속으로 뇌었다. ‘그래, 개꿈이었어. 내 미련을 하나님 이름으로 포장했던 거야.’

두 번째 결별을 통보받고 차 선수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길. 두 사람은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하지만 곧 놓아야만 했다. 그는 흉통을 느꼈다. 그날 밤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차 선수는 집에서 밤새 엉엉 울었고, 이 작가는 홍대 거리에 서서 퍼붓는 비가 자기를 대신해 운다고 생각했다.

당시 차 선수가 이 작가에게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한 건 가족의 반대 때문이었다. 가족은 두 사람의 나이 차이 등을 염려했다. 차 선수 역시 확신 없이 누군가와 사귀고 싶지 않았다. 본지는 이 작가의 전화기로 그녀와 통화를 했다. “저도 연애할 기회는 많았죠. 하지만 확신을 가질 만한 사람을 만나지 않을 바에는 서로에게 상처 주는 연애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책임 있는 만남을 원했기 때문에 신중했던 거죠.”

둘은 서로의 연락처를 지웠다. 차 선수는 여러 달 연습에 몰두했고 이 작가 역시 집필에 매진했다. 그녀는 자기 마음이 진심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주님께 기도를 많이 했었어요. 하나님에게 물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차 선수는 이 작가의 절친한 지인에게 자기 마음을 전했다.

차유람 “그가 주님 일을 하는 모습에 끌렸습니다”

감독과 가족 등의 반대로 이 작가에게 쉽게 연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작가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국가대표 단체복도 벗을 수 있어요. 제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이 작가님에게 전해주세요. 모든 걸 내려놓을 수도 있다고.” 지인으로부터 이 말과 함께 차 선수의 이메일 주소를 전달받은 이 작가는 이메일로 차 선수에게 연락했다.

두어 번 만났을 때다. 차 선수가 이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작가님, 제가 도저히 저희 부모님 설득을 못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우린 사귄 적도 없는데 왜 자꾸 헤어지죠?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때 둘은 약속했다. 2년 뒤에도 둘 다 혼자이면 그땐 결혼하자고. 그렇게 세 차례 헤어졌다. 이 작가는 깊은 고통에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고 한다.

몇 달 뒤 차 선수는 이 작가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배우자라는 확신이 오히려 강해졌어요. 작가님이 글만 쓰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주님의 일을 하고 많은 영혼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제가 꿈꿔왔던 배우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가는 저서 인세로 15개 학교와 교회 등을 세웠다. 또 9만명 가까운 회원이 활동하는 팬카페 폴레폴레(cafe.daum.net/wfwijs)와 함께 전국 저소득층 공부방에서 인문학 교육 봉사를 해왔다.

가족 설득에 나섰다. 이 작가가 보여준 건 사랑과 신앙이었다. “유람님의 언니, 어머니, 아버지를 차례대로 만났고 유람님에 대한 제 사랑과 글쓰기를 ‘예배’로 여기는 제 신앙을 소상히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님과는 무려 7시간 대화를 나눴습니다. 결국 저를 허락하셨고 마지막으로 유람님 가족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제 신앙을 보시고 목사님도 교제에 찬성하셨습니다.”

이 작가의 가족 중에는 어머니가 걱정했다. “내조를 염려했던 저희 어머니도 결국 유람님의 신앙을 보고 기쁘게 승낙하셨어요. 전 유람님을 보면서 동질감에 마음 한편이 늘 아팠던 것 같아요. 당구선수로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중학교를 자퇴하고 외롭게 고된 훈련을 감내하는 모습이, 제가 어마어마한 책 더미에 묻혀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어요.”

두 사람의 교제 허락 후 양가 가족들은 모여 예배를 드렸다. "작은 장소를 빌려 가족들만 모여 조촐하게 예배를 드렸어요. 하나님 안에서 저희 만남을 축복해주시는 자리였어요." 축복예배 후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유람님은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묵상을 많이 해서 생각이 깊고 성숙해요. 무슨 주제든 함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죠. 어떨 땐 제가 배워요."

지난해 말 베스트셀러 '생각하는 인문학'(2015)을 탈고한 뒤 이 작가는 차 선수와 인도 델리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 "저는 선교지에서 유람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왜 제게 이 짝을 주셨는지 다시 느꼈습니다. 유람님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빈민가에서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봉사하고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와 봉사를 평생 함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이 작가는 앞서 예비신부에 대해 "그의 미모, 지성, 인격에 반했다"고 했다. 그도 배우자 기도를 했는지 궁금했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배우자 기도를 따로 하진 않았습니다. 제 삶의 모토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입니다. 저는 글쓰기가 제 예배라고 생각하고, 그 예배를 통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백배 노력을 쏟아부으려 했어요. 장 칼뱅도 '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했죠. 저는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어쨌든 이 말씀을 따라 살려고 발버둥쳤더니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저에게 더해' 최고의 배우자를 주신 것 같습니다."

프로 당구선수의 예비 배우자 당구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못 쳐요. 생애 단 두 번 당구를 쳤어요. 서양 최고의 철학자 칸트가 프로 당수선구 못지않은 실력을 가졌던 것을 아세요? 수학 및 물리학적 사고능력이 있어야 당구를 잘할 수 있어요. 중국은 당구가 국민체육이고, 유럽은 귀족문화죠." "인문학으로 당구 실력을 커버(Cover)한다"는 말에 예비신랑은 여유롭게 웃었다.

두 사람에게 어떤 부부로 살고 싶은지 물었다. 이 작가는 "우선 전 유람님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빛'처럼 제게 세 번이나 다가와준 것에 평생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저희 부부는 책, 기부, 봉사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바다를 건너다보면 험한 파도도 만나겠죠. 의견이 다를 땐 하나님 말씀이라는 나침반을 앞에 놓고 길을 갈 겁니다"라고 했다.

차 선수는 "결혼을 앞두고 특별한 각오보다는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했다. 현숙한 이다. 차 선수와의 통화 후 예비신랑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그는 예비신부에게 "자기야, 고마워요"라고 인사한 뒤 통화를 마무리했다. 2시간가량 두 사람과의 대화 후 주님 안의 교제와 언약이 무엇인지 표상(表象) 하나가 그려졌다. 이 예비부부의 '항로'가 기대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