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자 삼성 측이 방어 총력전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자사주 전량을 KCC에 처분해 우호지분을 20% 가까이로 늘리는 한편, 건설업계의 불확실성이 합병의 이유라는 반박 자료를 내며 여론전에도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 1위(지난해 기준)인 삼성물산의 시장지위와 자산규모 등을 고려할 때 1(제일모직)대 0.35(삼성물산)로 정해진 합병 비율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삼성물산의 외국계 주주들과 소액주주들도 세 결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향후 합병과정에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엘리엇의 공격에 배수진 치는 삼성=삼성물산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전량(5.76%) 처분을 결의했다. 자사주 처분이 완료되면 삼성 계열사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지분 13.99%와 합쳐 우호지분이 19.75%로 늘어난다. 자사주는 의결권 없는 지분이지만 합병 가결을 위해 ‘백기사’ 역할을 하는 KCC에 매각하는 것이어서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제일모직 지분 10.18%를 보유한 2대 주주인 KCC는 삼성물산 지분을 5.79%로 늘릴 것이라고 공시했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지분율도 이날 33.97%로 더 늘어났다. 외국인은 엘리엇 측의 잠재 우호세력으로 평가된다. 인터넷 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회원들은 보유 주식 약 67만주에 대한 권리를 위임키로 했다. 이들은 엘리엇과 연대를 선언한 상태다. 양측의 지분 매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물산 주가도 상승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물산은 전날보다 10.29% 오른 7만5000원, 제일모직은 2.19% 하락한 17만8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삼성물산은 또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추진한 주요 이유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가가 낮은 시점을 일부러 택해 불리한 조건으로 합병 비율을 정했다는 엘리엇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삼성물산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에 미달한 것은 수년간 건설경기 침체로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라며 “2015년 1분기 기준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PBR은 삼성물산 0.67배, GS건설 0.61배, 현대건설 0.81배, 대림산업 0.50배”라고 설명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이다. PBR이 1보다 낮다는 것은 주가가 기업 재무구조상 부채를 갚고도 남는 순자산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기업의 자산가치가 증시에서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건설업계 전체가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 결정 및 비율은 정당했다는 논리다.
◇저평가된 삼성물산, 시장논리인가 지배구조 개편의 ‘희생양’인가=그러나 시장에서는 삼성물산의 주장에 반신반의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삼성물산의 장기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전망도 ‘안정적’에서 상향검토 감시대상으로 높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삼성물산에 대해 “건설업과 상사업 각 부문이 매우 우수하고 재무안정성도 뛰어나다”며 “국내 건설업의 높은 산업 위험에도 불구하고 건설회사 중 가장 우수한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있다”며 호평했다.
합병에 반대하는 측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했다고 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성격이 강한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은 침해됐다는 것이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삼성물산이 지배구조 문제에서 벗어나 독립된 위치에 있었다면 주가가 과소평가된 시점에 그런 비율(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0.35)로 합병 결정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주총 안건분석 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는 전날 국내 자산운용사 8곳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은 삼성물산의 일반주주 지분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합병 반대를 권고하는 의견서를 보냈다. 서스틴베스트는 의견서에서 “건설사 PBR이 1배 전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삼성물산의 PBR 수준이 역사적 최저 수준인 시점에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고 설명했다.
임시주총에서 합병이 성사돼도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연구원은 “엘리엇이 다음 달 17일 임시주총에선 의결권이 없지만 ‘냉각기간’이 끝나는 12일부터 추가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며 “삼성그룹과 버금가는 지분을 취득한 엘리엇이 임시 주총을 소집해 이사해임, 중간배당 등을 제시하거나 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다면 주총 결과와 관계없이 삼성엔 큰 시련이 생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기획]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 KCC에 매각”… 友軍 늘리기 총력
입력 2015-06-11 0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