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까지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는 모두 ‘병원 내 감염’으로 파악됐다. 지금까지 메르스 확산 과정을 보면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발병한 환자는 삼성서울병원의 의술과 명성을 알고서 그곳으로 치료받기 위해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최고 병원으로 알려진 삼성서울병원은 역설적이게도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트리는 ‘허브’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한국식 병실 구조와 독특한 병원문화’가 깔려 있다.
◇다인실 위주 병실 구조, 도떼기시장 응급실…감염병에 취약=국내 의료기관 대다수는 다인실(4∼6인실) 중심 병실 구조를 갖고 있다. 값이 싸기 때문에 환자들이 선호하지만 메르스 같은 감염병엔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우리나라 병원은 ‘보건위생’보다는 ‘복지’ 논리가 강조되는 측면이 강해 적은 비용으로 많은 환자를 수용하려 하지만 반대로 환자 감염이나 인권 문제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실제 평택성모병원 등에서 발생한 메르스 2차 감염자 상당수가 다인실에서 환자와 함께 머물다 감염됐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1인 병실이 대부분이다. 감염병 환자가 오면 무조건 1인실에 입원시켜 바이러스나 세균 노출을 차단한다. 엄 교수는 “철저한 초동 방역과 함께 이런 국내 병실의 구조적 시스템 개선이 따라주지 않으면 메르스 사태는 반복될 것”이라며 “1인실을 늘리되 운영 원가만큼 의료수가를 충분히 보전해줘 상급병실 사용에 따른 국민 부담을 줄이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응급실 상황도 개선돼야 한다.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은 한마디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전국에서 몰리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가 복도까지 나와 있고, 모든 진료과목 의료진이 섞여 있어 감염에 취약하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이 같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에는 (병을 숨기거나 혹은 진료 거부로) 병원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병원 쇼핑’도 한몫한다”면서 “자칫 슈퍼 전파자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은 응급실을 외상·감염·심혈관 등 질환별로 구획을 나눠 환자 출입구를 달리하고 있다. 안전 및 감염 관리도 철저하다. 환자가 오면 응급실 문이 닫히며 의사가 부를 때 아니면 보호자도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한다. 만약 감염병으로 확인되면 바로 응급실 내 격리공간으로 옮겨 모든 게 차단된다.
엄 교수는 “격리 공간에선 환자 치료는 물론 X선, CT 촬영까지 이뤄진다. 감염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투자비용 등을 감안할 때 모든 병원이 응급실 안에 격리공간을 갖추긴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인구에 비례해 전국에 감염병 거점병원을 지정하고, 증상이 의심되면 이곳으로 신속히 이송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통제받지 않는 병실, 병문안·간병문화=서울의 대형 종합병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만큼 병원 내부에서 환자 통제가 되지 않는 곳도 없다”면서 “입원 중에도 외출은 다반사고 병원 안에서 음식까지 시켜먹는다”고 털어놨다. 환자와 방문자의 출입이 그만큼 자유롭다는 얘기다.
한국 특유의 단체 병문안이나 가족간병문화도 감염 노출 빈도를 높인다. 누군가 아프면 가족이나 지인이 돌아가며 다인실 좁은 공간의 간이침대에서 ‘쪽잠 간병’을 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
간병인을 쓸 경우도 문제다. 간병인은 북적이는 병실에서 장기간 환자를 돌봐야 해 각종 감염에 노출되고, 연이어 다른 환자를 돌보면서 2차 확산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하지만 이를 예방할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간병 일선에 투입되기 일쑤다. 실제 지금까지 모두 5명의 간병인이 메르스 확진을 받았다. 또 병원에 소속된 신분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환자에게 직접 고용되기 때문에 관리나 통제가 쉽지 않다.
외국에는 간병문화 자체가 없다. 간호사가 일대일로 환자를 전담하기 때문이다. 병실이나 중환자실 면회도 정해진 시간(30분∼1시간)에만 가능하다. 보호자에게도 가운을 입히고 손 씻기도 철저히 시킨다. 대한감염학회 김우주 이사장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에도 오전·오후 한 번씩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출입문에서부터 통제가 잘 안 된다”면서 “면회시간이 아닌데도 자유롭게 드나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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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1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