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전격적인 미국 방문 연기 결정은 출국을 나흘 앞둔 10일 아침 내려졌다. 정상외교 차원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며칠 간 방미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다 연기라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진은 당초 방미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이번 주 초부터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방미 연기론’이 솔솔 나오고 여론 역시 좋지 않자 정무라인을 중심으로 연기 방안 등이 조심스럽게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외교부 등 외교라인은 일정 일부 축소를 하더라도 방미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고심했고, 결국 10일 아침 결정을 내린 뒤 참모진에게 미국 측과 일정을 다시 조율할 것을 지시했다.
이병기 비서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오전 8시(미국시간 오후 7시)쯤 카운터파트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했다. 케리 장관은 “(한국 상황을) 양해한다. 잘 이해하고 있다”며 “상호 편리한 가까운 시기에 다시 미국 방문 일정을 잡자”고 답변했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의 연기 요청에 합의한 이후 청와대는 오전 11시30분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런 사실을 발표했다. 직전까지도 청와대 춘추관은 박 대통령 전용기 탑승 전 수행원 및 기자들에 대한 발열 체크가 있을 것이라고 공지했었다.
청와대는 “한·미 양국이 가까운 시기에 다시 방문 일정을 잡자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의 방미는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부는 올해 초부터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위해 수개월간 서로 조율한 끝에 일정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이런 일정을 다시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연내 방문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르면 올 하반기 방미 재추진 방안도 거론되지만 미국 측 일정이 쉽게 비워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빠듯한 국내외 일정 등을 감안하면 한·미 정상회담은 양자가 아닌 다자회의 기간에 이뤄지는 식으로 대폭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 단계에서 재방문 일정 등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빠른 얘기”라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朴 대통령 방미 연기] 朴 직접 결정 尹 외교, 케리에 설명… 미국측 양해 구한 뒤 연기 전격 발표
입력 2015-06-11 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