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방미 연기… 野공세 차단하고 당청 갈등 다잡고 ‘정치적 효과’

입력 2015-06-11 03:00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전격 연기하며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방미 연기는 국내 정치용 카드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방미 연기 결정을 통해 여야에 각각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박 대통령은 방미까지 연기해가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야당의 공세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순방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정부를 강력하게 통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갈등을 빚는 새누리당에 경고음을 보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전격적인 방미 연기 결정으로 박 대통령은 ‘선(先) 메르스 사태 수습, 후(後) 국정 드라이브’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의 노림수…타깃 잃은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은 메르스 확산 방지가 최우선 과제라며 박 대통령에게 방미 연기를 줄곧 촉구했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방미 연기가 발표되기 전에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와중에 대통령은 미국 순방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격적인 방미 연기 결정으로 야당은 공격 목표를 상실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새누리당의 영남권 의원은 10일 “만약 박 대통령이 예정대로 미국을 방문했다면 새정치연합은 메르스 사태를 문제 삼아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을 것”이라며 “방미 연기로 야당은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방미 연기 결정으로 박 대통령을 향한 야당의 공세는 당분간 잠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파상 공세를 차단하며 메르스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스 사태 수습 이후 여권에 강력한 메시지 던질 듯=여권은 이달 초까지 국회의 시행령 수정권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심각한 내분을 겪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이 내홍을 덮었다. 여권 내 집안싸움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잠복된 상태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11일 국회법 개정안을 포함한 60여개 법안을 정부로 이송할 방침이다. 국회법 개정안이 송부되면 박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이를 공포하든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순방으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 여부도 변수다. 여야의 대치로 황 후보자의 인준 문제가 국회에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으로선 미국을 방문해 외교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여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오는 23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되면 정국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전후 여당에 국정 운영 협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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