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푸어’ ‘하우스 푸어’에 이어 ‘타임 푸어’가 등장했다. 저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그녀의 상황은 기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바로 그 상태에 있다.
“할 일이 어머 어마하게 많아서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던 어떤 날에는, 테사가 ‘엄마, 오늘 소풍 가는데 나랑 같이 가주면 안 되나요?’라고 부탁했다.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테사의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바쁠까? 왜 해도 해도 할 일이 줄지 않을까? 휴식과 여가는 도대체 언제 가능한 것일까? 시간 부족이 나만의 문제일까? 브리짓 슐트 기자는 이 문제에 대한 탐사에 나섰다. 그녀가 ‘쫓기는 삶’이라고 이름 붙인 타임 푸어 문제는 실제적인 시간 부족과 심리적인 시간 강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삶이 지속가능한지 아닌지를 가르는 문제”다.
그녀는 시간활용 전문가에게 개인 상담을 받고, 이 문제를 토론하는 파리 국제학술대회를 참관한다. 또 탄력근무제나 재택근무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기업인과 사회운동가를 만나고, 정치인이나 석학들과 대화를 나눈다. 세계에서 가장 여유롭게 사는 나라라는 덴마크를 찾아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녀는 이 과정을 책으로 쓰면서 중간 중간 자신의 실제 체험을 섞고 다양한 연구 결과와 리포트를 인용한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답게 시종일관 유쾌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크고 중요한 지점들을 놓치지 않는다.
책은 시간문제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담고 있다. “시간연구는 엄마들, 특히 집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들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시간이 가장 부족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일하는 여성들은 시간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놀이와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또 쫓기는 삶은 우리의 뇌와 몸을 파괴한다. 사람이 시간 압박을 받을 때, 마음이 급하고 무언가에 쫓길 때, 뇌에서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수축해 버린다.
저자는 쫓기는 삶을 만드는 주범으로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 된 두 가지 명령을 꼽는다. 개인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 바쳐 일벌레가 돼야 한다는 ‘이상적인 노동자가 돼라’는 명령, 그리고 극심한 육아 경쟁으로 나타나는 ‘좋은 엄마가 돼라’는 명령이 그것이다.
저자는 공적 보육을 통한 보육 문제 해결을 쫓기는 삶을 해결할 중요한 수단으로 본다. 그래서 “미국에선 1971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공보육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의 완고한 반대로 좌절되고 말았다”고 아쉬워한다.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덴마크인들이 누리는 여유도 상당 부분 국가가 보육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하는 시간에는 잡담이나 딴 짓을 하지 않는 능률적인 업무 문화, 그리고 요리와 가사, 육아에서 남성들의 평등한 분담 등이 더해진 결과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선 해법을 다룬다. 꽤나 실용적인 방법들이 소개돼 있지만 해법은 이 책의 부록에 불과하다.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것이야말로 핵심이다.
“쫓기는 삶이 엄마들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쫓기는 삶은 아빠들의 문제다. 아이들의 문제다. 직장생활의 문제, 가정생활의 문제, 가족의 문제다. 인권의 문제, 사회의 문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왜 우리는 늘 시계 바늘에 쫓기는 걸까
입력 2015-06-12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