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방미 연기] 전격 연기 ‘외교적 결례’… 韓·美 관계 부정적 영향 우려

입력 2015-06-11 02:44
박근혜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미 연기 결정이 한·미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양국이 한·미동맹이라는 ‘굳건한 연대’를 맺고 있긴 하지만, 갑작스러운 우리 정부의 ‘정상외교’ 연기가 미국 쪽에는 중대한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여질 개연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다음 주로 예정됐던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은 미국의 ‘요청’보다는 우리 정부의 ‘필요’에 따라 마련된 측면이 많았다. 정부는 얼마 전까지도 일본보다 한국과 더 친했던 미국이 최근 미·일 신(新)밀월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한 차원 더 격상시켜야 할 외교적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미가 큰 외교적 반향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박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조율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한국배치 문제도 박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풀어야 할 중요한 현안 중 하나였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가 강력히 반대하는 상황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듯한 태도를 잇달아 보여 왔고,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뚜렷한 방어논리를 미국 측에 필요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설득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결국 우리가 필요해서 마련된 방미 정상외교를 다시 우리 손으로 연기한 꼴이 돼버린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방미 연기’를 ‘방미 취소’로 받아들일 소지도 다분하다. 거의 꽉 찬 오바마 대통령의 1년 치 정상외교 일정을 감안하면 올해 안에 박 대통령 방미가 다시 추진되긴 힘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전염병 퇴치를 대미(對美)관계보다 선순위로 여기는 박근혜정부의 스탠스를 편하게 바라보긴 힘들다”는 부정적 평가도 존재한다. 이전 정부의 고위 관료를 지낸 외교전문가는 1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 대통령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론이 악화되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를 만회하려고 안 온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한 번 정해진 워싱턴 양자 정상회담은 ‘움직일 수 없는 바위’라는 게 국제 외교무대의 묵시율”이라고도 했다.

최근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영토분쟁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개진했던 점도 유의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전문가는 “영토분쟁에서 중국 편을 드는지를 알고 싶어 했던 미국이 박 대통령의 이번 결정 배경에 대해서도 ‘순수한 내치문제’가 아닌 다른 잣대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외교부는 미국이 박 대통령 결정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소 꺾이긴 했지만 확산일로인 메르스 문제를 필요충분하게 미국 측에 설명했고, 양해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결정에 대한 미국의 ‘대답’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이자 외교적 수사에 가깝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 평가다. “방문하는 쪽에서 못 가겠다는데 집주인이 ‘무조건 와야 된다’고 우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말 아니냐”는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