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 결정 존중은 하지만

입력 2015-06-11 00:39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4∼18일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청와대는“아직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 안전을 챙기기 위해”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야권은 방미 연기를 주장했고, 여론도 그다지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방미 연기는 정상외교도 중요하지만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 조기 종식에 국정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예정대로 방문하는 것과 연기하는 방안을 놓고 각각의 상황이 미칠 영향들을 두루두루 검토한 뒤 결정했을 것이다. 고심 끝에 내린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은 한·미 관계및 남북 관계, 동북아 안보 현실 등에 있어서 이번 연기로 인해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외교적 문제점들을 빈틈없이 점검해봐야 한다. 현재 변동성이 큰 동북아 정세로 볼 때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연기 결정에는 메르스가 확산됐을 경우 방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질 가능성이 고려됐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여 만인 5월 19일 국익 차원임을 강조하며 원전 관련 행사 참석차 아랍에미리트(UAE)에 갔을 때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또 세월호 1주기인 지난 4월 16일 당일 중남미 방문길에 오른 것도 일부에서는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메르스 사태 초기에 보여준 정부의 무능함과 정권의 상황관리 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대통령의 방미를 연기시켰다고 봐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을 자초한 바 크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박 대통령과 정권 담당자들은 상황을 곰곰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평소 이 정권이 국민들과 소통이 잘되고,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며,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평균 이상이 됐더라면 대통령의 정상외교를 연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이 메르스 초기에 적극 개입하며 상황 관리를 잘 해나갔더라면 일부에서 방미 연기를 촉구하는 정치적 주장이 나왔더라도 오히려 국익 차원에서 정상외교를 다녀오라는 의견도 아주 많았을 것이다. 메르스가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허약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방미 연기라는 상황은 이런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방미 연기를 결정한 만큼 메르스 진압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상회담까지 마뜩지 않게 생각하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겠다. 정상회담까지 흘려보낸 마당에 뭔가 고쳐지는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