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예로 지은 경복궁’ 저자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 “경복궁은 건축으로 표현한 성리학”

입력 2015-06-12 02:55

한국 전통건축은 통상 두 갈래로 나뉜다. 유교건축과 불교건축이다. 유교건축의 대표작이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었다. 그러나 경복궁 건축과 관련된 기록은 없다. 조선이 ‘기록의 나라’라는데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석재(54·사진)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 고려나 삼국시대에도 건축물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에 와서야 실학자들이 건축에 대한 기록을 조금씩 남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건축 기록이 없는 이유는 건축을 주도한 이가 건축가가 아니었다는 사실과도 연관된다. “경복궁의 설계자는 정도전이라는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건축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설계도나 작가노트가 있을 리 없다. 그 흔한 스케치 한 장 없다.”

경복궁은 어떻게 설계되었는가? 경복궁이 구현하고 있는 가치와 미학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감상하고 수용해야 하는가? 설계나 건축에 대한 당대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고스란히 해석의 영역이 된다.

임 교수가 경복궁 해석에 뛰어들었다. ‘예(禮)로 지은 경복궁’(인물과사상사)이 그 결과물이다. 해석의 실마리는 정도전이라는 건축가, 그리고 ‘주례’라는 중국 고전을 참고했다는 기록뿐이다. 이 가느다란 실마리로부터 850페이지에 달하는 경복궁 건축의 비밀이 풀려나왔다. 임 교수는 전통건축의 기준이 정신적 가치에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현대는 건축의 기준이 기술과 자본이지만, 옛날에는 철학, 미학, 사상 등이었다. 그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경복궁을 만든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아낸다면 경복궁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가 찾아낸 키워드는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의 나라를 세우면서 징표로 성리학이라는 사상을 심미 형식을 통해 조형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 경복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복궁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사상적 배경 위에 세워진 상징체이자 정신체였다.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전이며 이상국가였다. 통치이상을 담은 헌법이자 도덕 교과서였다. 그 배경에 ‘주례’와 성리학이 있었다.”

책은 경복궁 창건의 이유와 건축 논쟁으로 시작해 북한산과 인왕산을 중심으로 한 자연환경이 경복궁 설계에 반영된 내용, 경복궁에 유독 문이 많은 이유, 경복궁의 배치와 구성에 관한 해석, 경복궁에 적용된 미학과 사상, 순자와 세종이 경복궁 건축에 끼친 영향, 주요 건물들의 특징 등을 다룬다. 그림과 사진 자료도 풍부하다.

성리학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중에서도 ‘예’는 경복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학이다. 경복궁에 구현된 예는 질서나 법도로서의 예만이 아니다. 조화와 어울림으로서의 예를 함께 포용했다는 점이야말로 중요하다. 경복궁이 품격이 있으면서도 검소하고, 위엄이 있으면서 아기자기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임 교수는 중국의 자금성과 경복궁을 비교했다.

“자금성을 본 사람들이 경복궁에 대해 자금성 화장실보다 작다, 이런 농담을 많이 한다. 웅장함이나 규모를 비교해 사대(事大)의 증거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경복궁은 자금성의 80% 크기로 그렇게 작지 않다. 작아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중국 명·청시대의 궁궐은 자금성 하나지만 조선시대 궁궐은 네 개나 된다. 그걸 다 합치면 자금성의 2.5배나 된다.”

두 궁궐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미학이다. “동양사상의 핵심은 절제와 검소함이다. 경복궁은 그걸 지킨 것이고, 자금성은 권위와 과시를 앞세운 것이다. 왕권시대에 궁궐을 크게 짓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절제를 하는 것이야말로 용기였다. 경복궁은 철학적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제의 용기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임 교수의 50번째 책이다. 이화여대에 부임한 이듬해인 1995년 첫 책 ‘추상과 감흥’을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20년 사이에 50권의 책을 썼다. 건축계는 물론 출판계 전체에서도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작이다. 임 교수는 책 쓰기에 대해 “특기이자 직업이자 놀이”라고 했다.

그는 경기도 고양시에 50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서재를 꾸며놓았다. 주중에는 서재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서울 가족과 지내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학계 모임이나 술자리에도 안 나간다. 집 바깥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 한 달에 하루도 안 될 정도라니.

50권의 책을 썼지만 그는 여전히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지 몰라 괴로워한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책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데, 독자들이 너무 어렵다고 외면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한다.

그의 저술 작업은 건축이라는 주제를 벗어난 적이 없다. 서양건축에 대한 책들도 많이 썼지만 근래엔 전통건축으로 점차 관심을 옮겨가는 중이다. 그는 “건축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 건물들 속에서 살아간다. 건축물이 대중의 감성과 정서,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건축이 사람들에게 주는 영적 울림이나 예술적 아우라는 미술품 이상이다.”

글=김남중 기자, 사진=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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