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에는 약봉지가 줄을 서 있다. 혈압약 근육이완제 감기약 안약 발모제 비타민…. 5명의 가족이 비교적 건강한 편인데도 약이 떨어질 날이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매일같이 약을 먹는지 궁금하던 차에 건강 관련 외신기사에 눈길이 머문다.
미국 워싱턴대학 건강계측평가연구소가 세계 188개국의 301개 질병에 대한 조사 자료를 분석해 봤더니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지난 8일자 ‘헬스데이 뉴스’ 보도다.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요통 우울증 빈혈 난청이 꼽혔으며, 당뇨 치매 관절염의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고 했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3억명이 5개 이상의 질병을 갖고 있으며, 이 중 81%가 65세 이하다. 사실이라면 성인 대부분이 매일 아침 약을 복용한다고 봐야겠다.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은 2012년 현재 평균 81세(남 77.5세, 여 84.5세)로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 받는 기간을 뺀 건강수명은 71세에 불과하다. 평균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간 격차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크다.
향후 요양병원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기대수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겠지만 건강수명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0세 시대가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모임에 가면 ‘9988234’로 건배하자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죽자는 뜻이란다. 건강수명이 99세라는 건데 다들 꿈도 야무지다. 의사들은 의술이나 약으론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금연·절주·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일 터. 이를 실천해 식탁 위 약부터 치워야 할 텐데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한마당-성기철] 9988234를 원한다면
입력 2015-06-11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