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9일(이하 현지시간) 유럽연합(EU) 등 국제 채권단 요구를 일부 반영한 구제금융 협상안을 다시 제출해 채권단의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 주말 그리스에 연금 삭감과 증세 등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내년 3월 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그리스는 이를 거부하고 새 제안서를 마련해 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새 협상안은 올해와 내년의 재정흑자목표를 국내총생산(GDP)의 0.75%, 1.75%로 하고, 국가채무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담았다. 재정흑자목표는 지난 1일 그리스가 제출한 협상안(올해 0.6%, 내년 1.5%)보다는 높아진 것이지만 지난 3일 채권단이 요구한 수치(올해 1%, 내년 2%)에 비해선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일단 그리스가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려 협상의 여지가 이전보다는 커진 셈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이 새 협상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그리스 사태가 파국 또는 극적 봉합 수순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8일 그리스와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사이 연금생활자들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3년 전 바실리키 멜리오(56·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5년간 일해온 주(州) 소유 은행이 매각되자 해고의 공포가 찾아왔다. 25%까지 치솟은 실업률을 감안하면 해고된 뒤 다시 일자리를 얻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는 조기 퇴직해 연금생활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바실리키의 연금은 벌써 35%나 깎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려워 가끔은 잠도 오지 않는다”고 그녀는 털어놨다.
최근 은퇴한 파나지오타 스타토폴루(55·여)도 예상보다 적은 월 700유로(약 88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돈으로 일자리가 불안정한 자식까지 돌봐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구제금융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채권단은 그리스에 연금을 최대 48%까지 삭감하는 긴축정책을 요구했다. 긴축책을 실행하면서 일자리는 더욱 줄었다. 은퇴한 부모들은 연금으로 젊은 실직자들도 먹여 살려야 한다. 은퇴자들을 부양할 젊은 노동인구도 줄고 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그럴수록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리스의 연금 시스템은 경제 위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 2012년 그리스 연금펀드는 가치가 하락하면서 보유기금의 60%에 달하는 100억 유로(약 12조6000억원)의 손해를 입기도 했다. 채권단은 이 연금 시스템을 빨리 개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그리스, 새 협상안 제출
입력 2015-06-10 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