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9일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로써 엘리엇은 삼성과 13년 만에 두 번째 법정 다툼을 벌이게 됐다.
엘리엇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합병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 데 변함이 없다”며 “합병안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또 “이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못 박았다.
삼성과 엘리엇의 법적 분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삼성전자가 주주총회에서 기존 우선주의 배당률을 높이고 신규 발행 우선주를 10년 후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관을 삭제하자 엘리엇의 자회사인 맨체스터 시큐리티즈는 이에 반발하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주주총회 결의 불발효 확인 소송을 냈다. 양측의 공방은 대법원까지 갔고, 4년 만인 2006년 대법원이 맨체스터 시큐리티즈의 손을 들어줬다. 양측의 1차전은 ‘엘리엇의 승리’로 마무리됐던 셈이다. 자연스레 이번에 제기된 두 번째 법정 공방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은 다음 달 17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긴장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며 포문을 연 엘리엇은 현재 보유지분에서 추가로 의결권 있는 지분을 매입하기는 어렵다. 삼성물산 주주명부 폐쇄일이 11일이어서 주식 입고기간 이틀을 고려한 9일이 의결권 있는 지분 매입 마지노선인 탓이다. 엘리엇은 자본시장법상 ‘냉각 규정’에 따라 공시 후 5거래일이 되는 11일까지 지분 매입이 제한된다.
삼성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13.99%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주주 지분은 33.7%에 달한다. 외국인 주주 전체가 엘리엇의 우호세력은 아니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1대 0.35로 정해진 것은 불공정하다는 엘리엇의 여론전으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주주들이 삼성 우호세력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엘리엇은 삼성SDI 등 삼성 계열 주주에게도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는 서한을 보내는 등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도 세 결집에 나섰다. 8일 현재 기준 회원수 800명가량인 인터넷 카페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의 운영자는 공지 글에서 “계란으로도 바위가 깨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주권을 엘리엇 측에 위임하자고 제안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엘리엇, 삼성물산 ‘합병반대’ 가처분 신청
입력 2015-06-10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