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이번주 고비] 환자 무책임, 허술한 방역망… ‘병원 밖 감염’ 위험 키웠다

입력 2015-06-10 02:08 수정 2015-06-10 09:28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환자의 ‘병원 이동’이 사태 확산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확진 판정을 받은 감염자 가운데 일부는 격리 기간 중 병원 여러 곳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 당국의 격리·감시 대상에서 빠져 있다가 고열이 나자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닌 경우도 있다.

◇환자는 무책임하게, 당국은 소홀하게=9일 보건 당국에 따르면 90번 환자(62)는 지난 1일부터 자택 격리 대상이었으나 3일 열이 나자 충북 옥천제일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당국은 ‘증상이 나타나면 관할 보건소 담당자에게 알려 달라’고 했으나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또 다시 호흡곤란 증상이 오자 다른 병원(옥천성모병원)을 방문했다. 이어 8일 대전 을지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상태는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 을지대병원 중환자실은 의료진과 환자들이 함께 격리되는 ‘코호트 격리’ 조치가 취해졌다. 90번 환자가 거쳤던 병원의 의료진 등 수백명도 추가 격리 대상이 됐다. 한 사람의 무분별한 행동에 격리 대상이 늘었을 뿐 아니라 병원 밖 확산 위험도 더 커진 것이다.

그가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는 동안 보건 당국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하루 한 차례 정도 전화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었지만 이분은 전화에 응답하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을지대병원은 당국에서 통보받지 못하고 메르스 밀접 접촉자 검색 시스템을 통해 90번 환자의 감염 가능성을 알아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던 93번 환자(64·여)도 스스로 방역망을 벗어났다가 감염자로 발견됐다. 병원 측은 “관리 대상자임을 알려주고 검사를 권유했지만 지난 1일 다른 병원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 환자가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 역학조사를 추가로 해야 한다.

◇허술한 방역망, 놓친 사람 또 있나=처음부터 당국의 방역망에서 빠져 있어 환자가 마음대로 병원을 찾은 경우도 있다. 89번 환자(59)는 지난달 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체류했지만 격리·감시 대상이라는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는 증상이 나타나자 전북 김제의 병원 3곳(우석병원, 미래방사선과의원, 한솔내과의원)을 차례로 찾았다. 당국은 본인이 삼성서울병원 방문 사실을 신고한 7일에야 그를 격리 조치했다. 아울러 김제 병원 3곳의 의료진 등 300여명을 추가로 격리했다. 89번 사례가 나타남에 따라 그 말고도 당국이 삼성서울병원 등지에서 놓친 사람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환자들이 병원 이곳저곳을 옮겨다닌 이유는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일선 병원에서 고열 환자 등에 대한 진료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이를 의식했을 수 있다. 감염 가능성을 아예 인지하지 못한 채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다른 병원을 찾아다녔을 수도 있다. 6번 환자(71·사망)도 사태 초기 당국의 방역망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여의도성모병원 등을 찾아다니다 추가 감염을 낳았다.

보건 당국은 병원 간 이동 자제를 촉구했다.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가급적 집 근처 의료기관 이용을 부탁한다”면서 “병문안은 가능한 한 자제하고 의료시설 방문 때는 손을 깨끗이 씻어 달라”고 말했다. 당국은 “관리 대상자 위치추적을 지난 8일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