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병균 취급한다.” 대규모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의 전문의 A씨는 9일 일련의 상황이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툭 내뱉었다. 1주일 넘게 쪽잠으로 버티며 고생한 대가치곤 가혹했다. 돌아온 건 환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왜 메르스 환자를 받았냐’는 핀잔·비난이었다. 욕을 듣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는 “마치 우리가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처럼 묘사되는 게 답답하다. 환자 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이 국민들 사이에 번지면서 진료 현장의 의료진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를 하고 있지만 언제든 ‘메르스 접촉 의사’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어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메르스 환자 진료를 맡은 적 있던 서울 모 병원의 B교수는 하루하루 환자 보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한 입원환자가 퇴원하겠다고 떼를 써서 곤욕을 치렀다. 그는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메르스 확산의 책임이 의료인들에게만 쏠리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대형병원뿐 아니라 일반 의원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C원장은 “메르스 병원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환자가 급감한다. 병원을 찾는 환자 진료는 그가 누구든 의사의 의무지만 실제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일반 환자들 생각해서 메르스 의심환자 진료를 거부하면 진료거부로 처벌을 받는다. 환자 감소를 무릅쓰고도 진료하면 병원 의사와 간호사가 격리되고 병원은 한동안 문을 닫아야 한다”며 두 선택지 모두 어려운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병원은 환자가 줄어들면서 ‘메르스 진료 자제’를 암묵적으로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반 환자가 줄어들까 두려워 메르스 환자를 받지 않으려는 곳이 많다”며 “은연중에 환자를 받지 않는 쪽으로 대응하는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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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0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