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육아휴직급여, 근로자 돈으로 생색내는 정부

입력 2015-06-10 02:53

정부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모성보호·출산율 제고 정책 중 하나가 육아휴직을 한 근로자에게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의 월 급여를 주는 육아휴직제도다. 그렇다면 이 급여는 정부가 주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아니오’다.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된다. 근로자 본인과 사업주(회사)가 내는 보험료로 정부가 생색을 내는 셈이다. 정부는 육아기 근로자의 생활안정이나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실직 등에 지원해야 하는 실업급여 재원 등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전제로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요한 만큼 고용보험기금의 적절한 관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육아휴직·출산휴가 급여, 알고 보면 ‘내가 낸 돈’=고용보험기금은 사용자(회사)와 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료로 만들어진 재원이다. 건강보험료가 쌓인 건강보험기금과 마찬가지다. 고용보험의 가장 궁극적은 목적은 비자발적인 실직 등이 발생할 경우 실업급여를 지급해 생활의 어려움을 방지하고 재고용을 돕자는 데 있다. 그런데 고용보험기금 예산에서 실업급여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이 다름 아닌 모성보호육아지원금이다. 근로자의 육아휴직 기간과 출산휴가 기간에 정부가 지원하는 급여를 이 기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제도가 정착되고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9일 국회예산정책처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2006년 전체 고용보험기금(3조8536억원) 중 3.3% 수준이었던 모성보호급여(1254억원) 규모는 지난해 6982억원으로 전체 기금사업비 중 9.9%로 커졌다. 정책 사업에 활용되는 기금이 많아지면서 고용보험기금의 여유자금 운용 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고용보험법상 실업기금의 법정적립금은 해당연도 지출액의 1.5배 이상, 2배 미만으로 돼야 하지만 지난해 기준 실업기금의 법정적립금은 0.6배에 그쳤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수지가 악화되면 결국 고용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

◇사회안전망 확대하자면서 실업급여 재원 확보 무심한 정부=특히 고령화 심화와 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고용시장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높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논의한 노사정위원회 전문가그룹도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해 실업급여의 보장성을 높이고, 이를 위해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정책 사업에 대한 정부의 일반회계 지원(일반 예산 비중)을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실제 이 방안은 노사정 대표자들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관계자는 “노동계는 물론 사측과 공익위원이 모두 실업급여에서 나가는 모성보호재원을 일반 예산으로 돌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면서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전체 협상이 일괄 타결되면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협상이 깨지면서 없던 일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부 재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모성보호 관련 예산을 전부 일반회계로 돌리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다만 정부 예산 지원 비중을 30% 정도로 정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