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유모(59·여)씨는 닷새째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유씨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35번 환자(38·삼성서울병원 의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L타워에서 열린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9일 국민일보 취재팀과 전화로 인터뷰한 유씨는 “지난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35번 환자의 행적을 공개한 뒤 질병관리본부 측으로부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이후 모든 생활이 ‘스톱’됐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5일 오전 ‘12일까지 격리해야 한다’는 공지와 함께 “곧 체온계와 세정제, 마스크 등을 지급하러 방문하겠다”는 보건 당국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방문한 직원의 손에 들렸던 것은 마스크 2개와 자가 격리 생활수칙이 적힌 쪽지뿐이었다. 이마저도 빼꼼히 열린 문으로 순식간에 주고는 떠났다. 쪽지에 적힌 담당자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다른 지급품에 대해 묻자 ‘현재는 마스크만 지급할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평소 갱년기 증상이 있어서 열이 갑자기 오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혹시 메르스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집에서 스스로 상태를 체크할 수 있게 체온계를 주면 조금이라도 안심이 되겠는데….”
유씨는 매일 하루 1통씩 ‘1대 1 담당자’라는 보건 당국의 한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주로 “집에 잘 있느냐”며 위치를 확인한다고 했다. 그는 “혹시 몸에 이상이 생기면 전화를 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지만 이 또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이 될 수 있겠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격리 기간 동안 주 4회씩 들르던 동네 탁구교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매일 찾던 인근 시장, 이웃과의 티타임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평소 활달한 성격이라는 유씨는 종일 집에 있다보니 적적하고 답답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다”고 했다. 네 식구의 식사는 기존에 사뒀던 식재료로 해결하는 형편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뭘 사본 적이 있어야 배달을 시키죠. 다 큰 아들들도 자기 생활이 있어서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는데 이것저것 골라서 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고요.”
8일 보건 당국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13일까지 격리해야 한다’고 격리기간을 하루 늘렸다. 유씨는 “주먹구구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답답하고 신뢰가 안 간다. 정부의 대처에 크게 실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이 길가에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곤 하는데 35번 환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나서는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밤에 너무 답답해 아파트 단지까지 나가 봤는데 무서울 정도로 아무도 없는, 유령마을이 된 것 같더라고요.”
유씨는 의대생인 둘째 아들이 ‘건강한 사람에겐 별일 없이 지나갈 것’이라 말해 그나마 안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35번 환자와 마주친 뒤부터 격리가 시작된 지난 4일 사이에 내가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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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10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