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이번주 고비] (1) 침묵이 부른 禍… 행적 숨긴 76번 환자, 확산 부채질

입력 2015-06-09 02:13

(2) 정부 '연락 안되면 말고'… 환자 통제에 허점투성이

(3) 병원들, 이미지 추락 우려… 환자 입원할까 전전긍긍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발생 병원과 환자가 경유했던 병·의원 명단에 서울 건국대병원과 강동경희대병원이 새롭게 추가됐다. 두 곳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35)와 함께 머물다 퇴원했던 76번 환자(75·여)가 방문한 곳이다.

‘76번 환자 케이스’에는 메르스 방역의 여러 문제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은 메르스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거쳤는데도 76번 환자는 복지부의 추적 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여기에다 병원들이 메르스 환자 유입을 꺼리다보니 감염자는 치료를 받지 못할까봐 병력을 숨겼다.

◇방역 손놓은 정부=76번 환자는 지난달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들렀다 감염됐다. 그는 한 요양병원을 거쳐 지난 5일 엉덩이뼈 수술을 위해 강동경희대병원을 찾았다. 이때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발열 증상을 확인한 강동경희대병원은 환자를 우선 격리병동에 입원시키려 했다. 하지만 환자 측에서 “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응급실에 머물다 하루 뒤 건대병원으로 이동했다. 이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두 병원에서 76번 환자와 밀접 접촉한 의료진·환자 등은 386명이나 된다.

76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을 나온 지난달 28일부터 확진된 7일까지 보건 당국이 한 일은 고작 전화 2통이 전부였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8일 브리핑에서 “지난 3일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명단을 받아 관리하고 있었고, 6일과 7일 이틀간 76번 환자에게 복지부 콜센터에서 전화를 했다”며 “병원에 있던 상태라 연결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통화를 제외한 조치는 기록에 없다”고만 했다.

보건 당국은 시·군·구 보건소 담당자와 경찰까지 동원해 의심 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했지만 76번 환자는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았다.

◇병력 숨기는 환자들=76번 환자는 6일 건대병원을 찾았을 때 삼성서울병원에 머물렀던 사실을 숨겼다. 건대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왔을 때 메르스 관련 문진을 했는데 해당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며 “삼성서울병원에 갔던 사실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병원은 환자가 고열 증상을 보이자 부랴부랴 음압병상에 격리했다.

국내 메르스 사태의 출발점이 된 첫 번째 환자(68)도 그랬다. 바레인에서 농작물 재배 관련 일을 했던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을 방문하고 지난달 4일 귀국했다. 발열 등으로 병·의원 4곳을 찾았지만 중동에 다녀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0번 환자(44)도 의심 증상을 당국에 알리지 않고 중국으로 떠났다가 현지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감염내과 교수는 “환자들은 메르스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하면 치료를 거부할까봐 두려워하게 마련인데, 의료법상 병원은 모든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스 환자 올까 겁난다’=병원들은 사실 메르스 환자를 꺼린다. 병원 이미지 추락과 함께 환자 감소를 우려하는 것이다. 서울시내 한 병원 관계자는 “건대병원에서 저런 사태가 발생한 걸 보면 열이 나거나 가래가 있는 환자는 꺼려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보건 당국은 지난 6일에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메르스 대상자 조회시스템 운영을 시작했다. 첫 환자 발생 후 17일이나 지나서다. 지난 3일부터 시스템을 가동하겠다고 했다가 점검 등을 이유로 3일 이상 늦어졌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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