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선 쿠르드계 정당 돌풍… 게릴라투쟁 해온 소수계 10% 넘어 첫 의회 진출

입력 2015-06-09 02:42
터키 디야르바키르에서 7일 한 쿠르드족 유권자가 차량에 올라탄 채 쿠르드족 계열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의 원내 진출을 축하하며 국기를 흔들고 있다. 쿠르드족이 주장하는 자체 국기다. AFP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13년 만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터키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계(전체 인구의 18%)를 대변하는 인민민주당(HDP)은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8일 “터키 현대 정치사에 핵폭발적인 사건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터키 아나돌루 통신 등에 따르면 개표율 99.4% 상황에서 AKP는 40.8%를 득표했다. 터키는 100% 비례대표제인데, AKP는 이로써 전체 의석 550석 중 과반(276석)에 못 미치는 259석만 갖게 됐다. 이어 공화인민당(CHP) 25.1%, 민족주의행동당(MHP) 16.4%, HDP 12.8% 등으로 집계됐다. HDP는 의석을 받을 수 있는 최저 득표율인 10%를 넘겨 78석을 확보하며 제도권 내로 진입했다. 터키는 10% 미만 정당 득표의 경우 사표로 처리해 1위 정당에 의석을 배정한다. 결과적으로 HDP의 예상 밖 선전으로 AKP가 과반 의석에 실패한 셈이 됐다.

창당 3년이 채 안 되는 HDP는 터키 내 무장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당이다. 하지만 HDP는 비폭력을 호소하고 있고, 터키 내 다른 소수민족이나 여성, 노동자 등을 옹호하는 정책으로 ‘범진보진영’의 지지를 얻으면서 제4당으로 부상하게 됐다. HDP의 셀라하틴 데미르타시(42) 대표는 원내 진출 확정 뒤 “HDP는 터키의 정당이고, 터키가 곧 HDP”라고 ‘제도권 내 역할’을 강조했다. 외신들은 지난 30년간 터키 정부군과 반군 간의 충돌로 4만명 이상이 숨진 사실을 언급하며 데미르타시의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창당한 AKP는 2002년 이후 13년간 단독정부로 군림해오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 실패로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할 처지다. 현재 3개 야당이 모두 AKP와의 연정을 거부해 조기총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에르도안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11년간 총리를 해오던 그는 지난해 갑자기 대통령제를 도입해 대선을 치른 뒤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헌법상 여전히 총리에게 주요 권한이 남아 있어 이번에 총선에서 승리하면 강력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려 했었다. 이 개헌이 물 건너간 것은 물론 그 스스로도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에르도안의 지나친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부패 스캔들 때문에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렸다”고 분석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