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깡통 줍던 할머니의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15-06-09 02:26

지난 2일 정오 무렵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단지 지상주차장에서 한모(70) 할머니가 차량 사이에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허리 아래부터 골반까지 심하게 다쳤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 경찰 조사 결과 오모(55·여)씨가 주차를 하다 차량 앞에 나타난 할머니를 발견하고 당황해 브레이크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주차된 차량과 오씨 차량 사이에 끼인 것이었다.

대낮에 차량이 서행하는 주차장에서 왜 이런 사망사고가 일어났을까. 당시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할머니는 이 동네 토박이라고 한다. 슬하에 삼형제를 뒀고 미혼인 둘째 아들과 이 아파트 1층에 살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한다. 아들이 일하러 나가면 할머니는 혼자 지냈다. 아파트 노인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 교통사고로 골반에 철심을 박은 탓에 거동이 불편해 멀리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빈 깡통을 모을 때는 집 밖으로 나왔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돌아다니며 열심히 깡통을 주웠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였다. 사고 당시에도 할머니는 깡통을 줍기 위해 주차장 바로 옆 쓰레기분리수거장에 들렀다. 구부정한 자세로 깡통을 들고 나오는 할머니를 차량 운전석에 앉아 있던 오씨가 미처 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씨는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할머니에겐 휴대전화가 없었다. 몸에 지니고 있던 열쇠 하나가 신원을 파악할 유일한 단서였다. 경찰은 아파트 전 가구를 돌아다니며 열쇠를 일일이 꽂아봤다. 5시간가량 지나서야 1층에 있는 집을 찾아냈다. 창문 앞에는 할머니가 가꾸던 화단이 있었다. 모서리에 손때가 탄 초록 물뿌리개가 반듯이 놓여 있었다.

사고를 낸 오씨는 이 아파트 주민이 아니었다. 아파트 주차장 차단기가 올려져 있기에 단지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왔다고 한다. 미용실 가는 길에 이 단지에 차를 세우려 했던 것이다. 오씨는 지난 1월 운전면허를 땄다.

이 아파트는 한 집이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다. 단지 입구부터 갓길주차가 빈번하다. 단지 안의 도로 폭은 약 4m밖에 안 된다. 정부에서 지원받아 설치한 차량 차단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3일 오후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원은 없었다. 누구나 들어와 주차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서민 아파트 주차장에서 깡통을 줍던 할머니는 대낮에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안전운전 의무 위반’ 혐의로 오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박세환 조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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