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 순교한 독일 신학자이자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의 유언이다. 그의 일생을 그린 연극 ‘전율의 잔(The Cup of Trembling)’이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CTS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1980년부터 매년 공연하는 성탄절 연극 ‘빈방 있습니까’를 제작한 최종률(65·서울동숭교회·사진) 장로가 연출을 맡았다.
최 장로와 통화한 지난 5일 저녁, 수화기 너머로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새어 들어왔다. “배우들과 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의 낮은 목소리에서 배우이자 연출가로 산 40여년 관록이 묻어났다. “왜 이렇게 긴 시간 이 보석 같은 연극을 아무도 무대에 올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미 극작가 엘리자베스 베리힐이 58년 쓴 ‘전율의 잔’은 79년 대한기독교서회가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본회퍼는 41년 아돌프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 43년 체포돼 2년 동안 수형생활하다 처형됐다. 그는 본회퍼 70주기를 맞아 한국 교회가 그의 삶과 신앙을 배웠으면 한다. “본회퍼는 당시 죄에 대한 고백이나 회개가 없는 세례와 성만찬으로 독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 교회도 질타를 받고 있어요. 회개는 하지 않고 은혜와 축복을 강조해요. 저희도 하나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본회퍼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었다. “루터교 목사였던 그가 아돌프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하게 된 것은 히틀러가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기독교를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침묵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최 장로는 본회퍼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길 원한다. “그는 뱀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연약한 사람이었어요. 순교자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초인적 담대함과 용기를 가진 이라고 생각합니다. 본회퍼는 감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감옥에서 커피 한 잔을 갈망하고, 친구와의 대화를 그리워하고 새 소리에 감동하는…. 다만 불의 앞에 도피하지 않는 ‘행동하는 신앙’을 가졌을 뿐이에요.”
전율의 잔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웰메이드(Well-made)’ 연극이다. “본회퍼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완전한 자유를 향해서 나아가요. 훈련 행동 고난 죽음의 순서로 전개되죠. 제2의 천로역정 같죠? (웃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결국 영원한 자유를 누렸을 것입니다.” 전율의 잔은 본회퍼의 인간적 고뇌가 신앙적 결단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깊이 있게 묘사된다.
제목은 그 고뇌와 결단의 이유를 드러낸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지요. 그 이미지를 차용한 것입니다. 본회퍼 역시 연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잔’을 받아 들었던 것입니다.”
‘전율의 잔’은 지난해 10월 최 장로의 연출로 서울 대학로 엘림홀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기독교서회 125주년과 CTS 20주년을 맞아 이번에 재공연을 하게 됐다. 기독신우회 소속 배우 최선자, 정선일, 정영숙, 우상민, 이경영, 변은영 등 20여명이 전율의 잔에 출연한다. 초등생 이상 관람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4시, 8시, 주일 오후 5시. 티켓은 3만, 5만원. 예매는 갓피플(ots.godpeople.com, 02-786-0286).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본회퍼 ‘행동하는 신앙’ 무대서 만난다
입력 2015-06-10 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