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장르’ 맞아?… 스크린 압도하는 女배우 파워

입력 2015-06-10 02:38
‘무뢰한’의 전도연
‘매드맥스’의 샤를리즈 테론
‘스파이’의 멜리사 매카시
영화 ‘무뢰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스파이’의 공통점은 남성적 장르라는 것이다. ‘무뢰한’은 살인자의 여자와 형사의 비정한 사랑을 그린 하드보일드 멜로다. ‘매드맥스’는 주인공과 악당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액션 스릴러고, ‘스파이’는 일급비밀 스파이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첩보 액션이다. 세 작품 모두 남성 중심의 영화이지만 여배우들의 카리스마가 남자배우 못지않다. ‘무뢰한’의 전도연, ‘매드맥스’의 샤를리즈 테론, ‘스파이’의 멜리사 매카시. 남성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형의 틀을 깼다고나 할까.

◇거친 이미지와 순수함이 공존하는 여자=‘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냉혹하게 그렸다. 전도연은 무뢰한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술집 여자 김혜경을 연기했다. 형사 역의 김남길과 살인자 역의 박성웅은 와일드한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다. 반면 전도연은 복합적인 감정을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 등으로 섬세하게 표현한다. 리얼한 연기는 두 남자배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김혜경은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여자다. 그러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는 순수함을 가졌다. 전도연은 사랑에 상처 받은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진짜배기 사랑의 감정을 뛰어난 표현력으로 보여주며 “역시 칸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무뢰한’을 관람한 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계는 어떡할 뻔 했나”라며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전례 없는 강인한 캐릭터의 여전사=‘매드맥스’는 핵전쟁으로 멸망한 22세기에 얼마 남지 않은 물과 기름을 차지한 독재자 임모탄이 살아남은 인류를 지배하는 얘기다. 임모탄에 맞서는 주인공 맥스 역의 톰 하디와 임모탄의 전사인 신인류 눅스 역의 니콜라스 홀트 등 남성들이 펼치는 액션이 시종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임모탄의 폭정에 반발하는 여전사 퓨리오사 역의 샤를리즈 테론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전대미문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퓨리오사는 고전적인 영웅과 비교했을 때 인간적인 결점으로 가득한 캐릭터이다. 테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15세 때 어머니가 자신을 폭행하던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96년 우연히 동네 은행에서 삿대질하며 다투던 모습이 눈에 띄어 톰 행크스의 감독 데뷔작 ‘댓 싱 유두’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친절한 금자씨’의 리메이크 작품에 제작과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테론의 카리스마가 빛난다.

◇능청스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첩보원=‘스파이’는 ‘007’ ‘본 시리즈’ ‘킹스맨’ 등 남성 캐릭터를 내세운 기존의 스파이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현장 요원들의 임무 수행을 돕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내근 요원 쿠퍼. 스파이도 모르는 스파이를 내세워 첩보 액션의 고정관념을 깨는 영화다. 멜리사 매카시의 코믹한 표정과 압도적인 비주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요원 브래들리 파인(주드 로)의 파트너로 임무를 수행하던 쿠퍼는 핵무기의 밀거래를 막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특유의 분위기와 스파이 캐릭터들의 반전 코믹 액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시선을 붙든다. 여배우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설렁설렁한 것은 아니다. 긴박감 넘치는 추격 장면부터 헬리콥터에 매달린 채 펼치는 스턴트 액션, 소품을 활용한 주방 액션까지 기발하면서도 엉뚱한 재미로 스파이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