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6개월 동안 논의 끝에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한 민간 차원의 권고안이 곧 발표된다고 한다. 찬반 논란이 많은 정책사안에 대해 국민 의견을 공개적으로 수렴하는 최초의 시도이며, 경주 방폐장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사회적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이 정한 절차이기도 하다.
이 권고안을 만든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2013년 10월 출범 당시 일부 환경단체 측이 불참하여 반쪽 위원회라는 지적을 받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 과정은 앞으로 사회 갈등이 많은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공론화는 향후 정부 정책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미리 짚어보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전문성이 의사결정의 중요 부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과 같은 과학기술 영역은 과학적 합리성이 판단의 최우선 요인이 돼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수용성이나 경제성을 등한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학적 판단이 가중치가 높은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포퓰리즘의 위험을 줄이자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대형 국책사업 추진에 있어 소위 정치가 과학적 판단에 우선하는 바람에 일을 그르친 사례를 여러 번 경험했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에 의해 결정된 국가적 사업은 훗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는 31개국이다. 이 중 60% 국가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관리 정책을 결정했다. 재처리(재활용) 없이 최종 처분으로 결정한 나라가 10개국, 재처리를 택한 나라가 8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3개 나라는 아직 정책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 개발 연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개정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괄목할 만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기술 분야다. 핵 비확산성과 경제성 등이 있는 것으로 향후 확인되면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해 소듐냉각로(SFR)의 연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양도 대폭 줄이고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로도 다시 사용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기술개발 여부에 따라서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을 정하겠지만 그 전에 매년 750t씩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무엇보다 안전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대전제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보관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는 원전 내의 임시저장시설이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외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고 있는 세계 5위 원자력 선진국인 우리나라가 이미 미국 독일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이 안전하게 운영 중인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발전소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다면 이것은 국격의 문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발등의 불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미래세대에게 넘어간다. 이제는 검증된 기술에 대해 정치적 논리와 사회적 갈등을 넘어 기술적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로 지혜와 역량을 하나로 모아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무성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기고-제무성] 핵연료, 과학적 판단이 우선
입력 2015-06-0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