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2차 유행의 진원지가 됐다. 메르스 사태의 무게중심이 지금까지 최다 환자(2·3차 포함 모두 37명)를 발생시킨 평택성모병원에서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가고 있는 양상이다.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빅5’ 병원 중 하나인 우리나라 최고 의료기관이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감염내과 전문의다. 1996년 아시아태평양감염재단을 설립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누구보다 ‘병원 내 감염’ 관리와 방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런 곳에서조차 메르스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자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2차 유행 진원지=삼성서울병원은 지난달 27일 14번 환자(35)가 응급실에 입원한 뒤 7일까지 모두 17명의 3차 감염자를 냈다. 보건 당국은 “14번 환자는 지난달 21일 발열 등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체내 바이러스가 가장 많은 시기(증상 발현 5∼7일째)인 지난달 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기 때문에 3차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택성모병원이 ‘1차 유행’의 발원지라면 삼성서울병원은 ‘2차 유행’의 진원지인 셈이다. 현재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추적 관찰 대상자가 1500명을 훌쩍 넘어 추가 환자가 더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최고 병원도 속수무책, 왜?=중소병원인 평택성모병원은 ‘밀폐 병실’이라는 특수 환경과 허술한 감염 관리로 인한 초기 방역 실패가 환자 대량 발생의 원인으로 파악됐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14번 환자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못한 탓이 컸다. 14번 환자가 메르스 환자였음을 병원이 인지한 건 지난달 29일이다. 송 병원장은 “14번 환자의 기침 증상이 단순 폐렴인지 메르스인지 체크했지만 중동 여행이나 메르스 노출 등에 대해 (보건 당국으로부터) 어떤 정보도 받지 못해 메르스 판정을 내릴 수 없었다”고 했다.
의료진에만이라도 확진 환자 및 병원 정보가 공개됐다면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부터 메르스 연관성을 의심해 대규모 노출을 막을 수 있었다. 관련 정보 없이 14번 환자를 세균성 폐렴으로 간주해 치료하는 동안 응급실을 찾았던 환자·보호자·의료진 등이 메르스에 무방비 노출됐고,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 측은 지난달 29일에야 14번 환자를 진료했던 의료진 등을 격리 조치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권준욱 총괄반장은 “우리가 원점에서 면밀히 뒤지기 시작한 것이 지난달 28일부터였고, 그러다 보니 29일 14번 환자의 행적이 해당 병원에 통지됐다. 신속한 조처가 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고 밝혔다. 보건 당국과 각급 병원의 긴밀한 공조가 아쉬운 대목이다.
병원 측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했던 부분은 또 있다. 지난 2일 이 병원 의료진 중 최초로 3차 감염 통보를 받은 외과의사(35번 환자)는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 다중 운집 행사에 참석하거나 회진을 도는 등 정상 생활했다. 이 의사가 발열 등 메르스 증상을 보인 건 31일 오후였고 직접 병원 측에 요청해 격리병동(1인실)에 입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의사와 접촉한 같은 과 의료진에 대한 격리 조치는 한참 늦은 지난 3일에서야 이뤄졌다. 송 병원장은 “35번 환자인 의사는 14번 환자를 직접 본 의료진이 아니어서 처음엔 격리 대상에서 배제됐다”면서 “하지만 이후 CCTV를 통해 확인하면서 근처에 있던 의료진 판별 작업을 했고 이에 따라 격리 조치했다”고 했다.
◇큰 병원 응급실 찾는 관행이 문제=전국구 병원에 해당하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다수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첫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확산 사태를 배제하기 어렵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환자, 보호자들이 감염 사실을 모른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가 지역사회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되면 메르스 감염자가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튀어나올 수 있다.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방문자 다수가 감염됐다면 그 여파는 평택성모병원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이사장은 “만성 질환자들이 서울 인기 병원에 무조건 드러누워 대기하는 한국 특유의 관행이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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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8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