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비상] ‘통째 격리’ 순창 마을 가보니 “농번기 집에 갇혀 답답… 생필품 공무원이 공급”

입력 2015-06-08 02:33
메르스 확산 우려로 주민 119명 전체가 자가격리 조치된 전북 순창군의 한 마을 앞에서 7일 군 보건의료원 차량이 주민들의 발열검사 등을 하기 위해 통제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재래시장은 물론이고 버스터미널에서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군 의료원에는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농협과 농가 등에는 농산물 주문을 취소하는 전화가 잇따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파문으로 한 마을이 통째로 자가격리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는 전북 순창군. 국내 대표 청정 고장이자 장수(長壽)마을인 순창이 큰 혼란에 빠졌다.

7일 찾아간 순창읍의 한 마을은 30도 가까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스산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메르스 1차 검진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던 A씨(72·여)가 보름 가까이 머물렀던 마을이다. 전날 A씨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불안감은 더 커졌다.

3개의 마을 진입로는 경찰과 군청 공무원들이 4명씩 짝을 이뤄 통제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취재진만이 몰려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오후 2시쯤 순창군 보건의료원에서 나온 차량이 주민들의 방역 검사를 위해 마을로 들어섰다. 의료원에서는 하루 두 차례 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상태를 살핀다고 했다.

집에서만 지내고 있는 주민들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장 성모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농번기인데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굴착기로도 못 막을 상황으로 만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의 생필품은 공무원이 대신 사다 주었다. 공무원 이모씨는 “필요한 물품을 종이 등에 써오면 그 종이까지 소독을 한 뒤 들고 가 가게에 가서 사다주고 있다”고 말했다.

3일 동안 격리된 주민 가운데 발열 등 이상 증세를 보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옆에서 A씨를 돌봤던 2명도 한때 열이 났으나 음성으로 판정됐다.

한 주민은 “우리는 환자가 아니다”라며 “이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마치 몹쓸 병에 걸린 사람처럼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마을은 오는 18일까지 14일간 주민 119명 전체가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파장은 이 마을만이 아닌 군 지역 전체로 퍼지고 있다.

마을을 나와 시장을 거쳐 군청까지 차를 몰고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은 손에 꼽을 만했다. 시장에서는 문이 닫힌 가게가 두 집 건너 하나씩이었다. 오후 3시쯤 시외버스터미널 안에서는 대기 승객이 딱 1명만 보였다.

군 의료원에는 문의전화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정선(여)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기침만 하더라도 이상한 증세가 아니냐고 물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농산물 판매 피해다. 농민들이 생산한 복분자와 오디, 매실, 블루베리 등의 주문이 연일 취소되고 있다. 한정안 군 공보담당은 “농산물이 메르스와 직접 연관이 없는 데다 대부분 읍내에서 15㎞쯤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물품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시장에도 손님이 확 줄었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장사를 하다 일찍 문을 닫는 가게도 있었다. 탐방 명소인 강천산에도 발길이 5분의 1로 줄었다고 전해졌다.

전북도와 순창군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순창에서는 중학교 1곳을 제외한 모든 학교와 유치원이 휴업했다. 도서관과 청소년센터도 문을 닫았다.

인근 임실에 있는 육군 35사단은 전북 지역에서 시행하려던 화랑훈련을 내년 초로 연기하고 장병들의 외출과 외박도 금지했다. 순창=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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