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명찬] 새로운 한·일관계 받아들여야

입력 2015-06-08 02:45

최근의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그 이유를 양국 정치 지도자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이나 양국 국민성 등 두 나라의 ‘특수 사정’에서 찾으려고 한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일그러진 역사인식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 문제와 영토 문제에 대한 논의의 빈도는 1980년대 후반 높아지기 시작해 90년대 이후 급증해 왔다.

그렇다면 9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상황은 어떠한 원인에 의해 조성된 것일까. 첫째, 한국에 있어서 일본의 경제적 중요성이 급격히 저하한 것이다. 70년대 전반까지 한국경제에 일본이 점하는 비율은 40%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80년대에 들어서자 극적으로 급전직하한다. 그 원인은 80년대에 시작한 냉전의 종언을 향한 움직임이었다. 냉전 하의 한국은 동서 양 진영 대립의 최전선에 위치하는 분단국가로서 중국이나 소련을 비롯한 동구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과 국교가 없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무역관계가 없었다. 결국 서방 진영에 속했던 한국의 주요 우호국이었던 미·일에 대한 의존도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80년대 이후 극적으로 변한다. 중국이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로 등장하면서 냉전 하의 한국에 중요한 파트너였던 미·일 의존도는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둘째, 한국의 경제발전이다. 광복 후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국가였으며, 당연히 당시 한국 기업은 세계적 규모로 비즈니스를 전개할 능력이 없었다. 자본과 기술 양면에서 많은 부분을 미·일 양국 기업에 의존했으며, 따라서 미·일 양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도성장의 결과 한국 기업은 자본·기술 양면에서 미·일 양국에 대한 의존도를 급속히 감소시켜 세계 시장에서도 독자의 시장을 개척하게 되었다. 결과 한국경제의 미·일 양국에 대한 의존도는 또다시 저하되었다.

마지막으로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다. 글로벌화는 국제사회에서의 선택지 증가를 의미한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로 인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과도 교류가 증가해지고, 결과적으로 근린지역의 중요성이 저하한다. 한·일 간 무역과 교류는 총량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양국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결국 한·일 간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요소들이 밀접히 연계되어 한국경제에 있어서 일본의 중요성이 급격히 저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냉전 종결로 인해 안전보장 면에서 변화가 발생했다. 한국전쟁에 미·중 양국이 직접 참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냉전 하의 한국은 북한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존재하는 중·소 양국의 거대한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따라서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과 그 주요 기지가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냉전의 붕괴로 인해 북한과 중·러 양국의 군사적 동맹관계가 사실상 붕괴하자 한국의 안전보장상의 위협이 크게 감소하게 되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한국의 안전보장 면에서도 일본의 중요성은 손상되게 되었다.

작년 가을에 모리모토 사토시 전 방위성 장관과의 대화가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는 한국에 일본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안전보장은 미국과, 경제 문제는 중국과 잘 해나가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일본도 한국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최근의 한·일 간 불화는 이렇게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은 구조적인 요인이 자리 잡고 있어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이전의 한·일 관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상으로도 좋을 듯하다. 아베 총리가 돌연 위안부 문제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궁금하다.

이명찬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