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유언비어의 공식

입력 2015-06-08 00:10

메르스가 온 나라를 감염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메르스 바이러스에도 감염되고, 더 많게는 메르스가 자아내는 공포 기운에도 감염된다. 거리의 마스크 행렬이 익숙한 풍경이 되고, 세상일에 도통 관심이 없는 시골 부모님마저 “거긴 괜찮냐”고 전화하시는 걸 보면 가히 ‘메르스포비아’(MERS-phobia·메르스로 인한 공포)의 도래다.

유언비어도 문제다. 유언비어의 ‘비’는 ‘바퀴벌레 비(蜚)’자다. 바퀴벌레 같은 말이 인터넷과 SNS를 타고 이전보다 더 멀리, 빠르게 날아다닌다. 유언비어 생산자는 아마도 나약한 자일 것이다. 유언비어에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의심과 공포를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천박함이,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비열함이 묻어 있다. 이를 감추려 가공의 전문가나 목격자를 끌어들여 포장한다.

유언비어는 환경과 양분이 주어져야 번식할 수 있다. 메르스 괴담의 경우 허약한 전염병 방역 체계와 의료 시스템, 무엇보다 정부의 무능함이 좋은 먹이가 됐다. 세월호 참사 때나, 생물학적 재난인 지금의 메르스 사태나 정부는 어쩜 이리 똑같이 허약한가.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들이 계발한 유언비어공식, R(Rumor·유언비어)=i(importance·중요성)×a(ambiguity·불확실성)에 대입해 보면 정부가 키운 불확실성이 메르스 공포를 키웠다. 정부는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5월 20일부터 1주일이 넘도록 ‘크게 걱정하지 마라’고만 했다. 2차 감염자가 나왔을 때 3차 감염은 없다고 했고, 3차 감염자가 발생하자 “모두 병원 내 감염”이라고 했다. 정부가 불확실성의 원천이다 보니 유언비어의 사실 여부 확인은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다. 방금 아내가 ‘받은 글’이라며 보내온 카카오톡 내용에 더 눈길이 갈 따름이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유언비어 엄벌’ 방침에 냉소가 나오는 거다. 유언비어 만연 풍조는 오히려 정부에 묻고 있는 건지 모른다. 우리가 내는 세금 수준만큼은 정부가 우릴 지켜주고 있느냐고.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