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들

입력 2015-06-08 00:10

어떠할 때 사람이 믿어지지 않는가? 첫째, 무능해 보인다. 문제 핵심을 파악 못하고 어설프고 대충대충 하고 늑장 부리며 타이밍을 놓치면 믿을 수 없다. 둘째, 남 탓만 하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조건과 상황과 다른 사람들을 탓하고 본인의 책임과 권한을 모르면 도저히 믿고 일을 맡길 수가 없다.

셋째, 자꾸 비밀로 한다. 정보를 감추고 공유하려 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다른 동기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되고 비밀로 하고 숨기려는 이유가 뭔지 대체 이해가 안 되니 믿을 수가 없다. 넷째, 나를 믿지 않는다.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서로 협력이 안 될 터이니 믿을 수가 없다. 신뢰란 서로 오가는 것이다.

신뢰의 조건은 사람이나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르스는 무섭지만 이 사태를 우리가 잘 관리하고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메르스 공포의 확산이 아니라 메르스의 지역사회 확산을 막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박근혜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무능과 무책임과 비밀주의와 국민 불신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왜 초동대처를 제대로 못했느냐, 왜 위기 매뉴얼을 못 만들었느냐 하는 분석은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국민을 믿고 국민의 건강한 상식을 믿고 정치적 입장 따위는 따지지 말고 대승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체계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가 12년 전 상륙했을 때 우리는 모범 방역국가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던 저력이 있다. 점점 더 세계화되는 사회에서 메르스뿐 아니라 어떤 병균이 세계를 오갈지 모르는 시대다.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신뢰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는 공적 윤리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메르스는 무섭다. 하지만 무능, 무책임, 비밀주의, 국민 불신은 더 무섭다. 부디 믿게 해다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