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청와대의 메르스 대처법

입력 2015-06-08 00:20

확산세가 멈추지 않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바이러스처럼 박근혜정부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여론의 질타도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안이한 초동대응으로 초기 진압 기회를 놓치면서 온 사회가 패닉 상태에 빠졌는데도,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요체다. 정부는 7일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경유 병원 24곳을 뒤늦게 공개했다. 심상치 않은 여론 압박에 보름 넘게 고수해 온 비공개 원칙을 포기한 것이다.

현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기엔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현재 국민이 체감하는 공포는 그 이상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오기까지 청와대가 보여준 대응은 한마디로 뒷북 대응에 다름 아니다. 지난달 20일 첫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 이후 청와대는 열흘이 지나도록 직접 나서서 관련 사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보건역량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한 다음 날에서야 비서실 내에 대책반을 구성했다.

특히 지난 2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GS그룹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정치적으론 커다란 패착이다.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발생하고, 3차 감염까지 우려되는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준 ‘창조경제’ 행보는 한가한 나들이에 지나지 않았다. 여론은 국가적 비상사태를 선포하라고 아우성인데, 청와대는 창조경제를 외치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혁신센터를 빼놓지 않고 참석하려는 대통령 의지가 강했다면 청와대는 출범식을 미뤘어도 됐고, 그게 아니라면 행사에 관계부처 장관 정도만 참석해도 좋았을 것이다. 청와대의 정무 감각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청와대를 향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국가지정격리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1주일 전에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할 국가원수의 모습을 뒤늦게 보여준 것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이는 박 대통령을 보필하는 참모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늑장 대응과 판단 미스는 임기 내내 그래왔다. 2013년 5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파문에 대해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께 사과드린다”고 해 비판을 받았고,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논란도 따지고 보면 김기춘 비서실장의 애매모호한 답변이 단초를 제공한 측면이 컸다. 지난해 연말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 때도 청와대의 위기관리능력은 낙제점 수준이었다. 대통령이 모든 사안을 일일이 파악하고 지시할 수 없다. 참모들의 판단력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도 예외는 아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관계부처로부터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불안감을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져서인지, 공무원연금 개혁 처리와 연계된 국회법 개정안에 강력 반발하느라 모든 힘을 쏟은 탓인지 창궐하는 메르스 대처에는 한 발씩 늦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는 필요 이상의 공포심은 ‘오버’라고 얘기한다.

여전히 침체된 체감경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대다수 국민에게 국회법 개정안은 먼 나라 얘기다. 반면 메르스는 눈앞에 닥친 재앙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 책무다. 현 시점에서 청와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메르스 확산 방지, 국민안전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토록 강조해 온 골든타임은 경제재도약과 정치개혁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