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성모병원에서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첫 환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확진자 41명 중 30명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사례 중 다수도 이 병원에서 파생된 감염으로 파악되고 있다. 메르스 공포의 진원지인 셈이다.
보건 당국은 첫 환자로 인해 수십명의 ‘병원 내 감염’이 확인되자 이 병원의 환경에 주목했다. 지난달 30일 구성된 민관합동대책팀이 병원을 찾아 환경조사를 벌인 결과 두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됐다.
우선 병실마다 있어야 할 환기구와 배기구가 없고 에어컨만 설치돼 있었다. 창은 크지 않고 밑으로 여는 형태였다. 민관합동대책팀 역학조사위원장인 한양대 최보율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병실 환경에서는 첫 환자의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나온 침방울(비말),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과 접촉한 환자복이나 린넨에서 발생한 먼지 등이 환기나 배기가 되지 않은 채 병실 안에 오랫동안 고농도로 쌓이게 된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창문이나 문을 열면 ‘에어로졸’ 형태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에어로졸은 주로 공기 같은 기체 내에 미세한 형태로 분포돼 있는 액체나 고체 입자를 말한다. 환기·배기가 불가능한 공간에서 오염된 물방울과 먼지 등을 빨아들인 에어컨이 찬 공기를 배출할 때 바이러스를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내뿜었을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에어로졸 상태가 된 침방울 입자 등은 공기 중에 떠서 훨씬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그렇게 에어로졸 형태로 이동했다면 다른 병실과 다른 층에도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조사팀은 추정했다. 실제 5개 병실에서 에어컨 필터를 꺼내 조사한 결과 3개에서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 조각’이 검출된 것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병원 내 문고리, 화장실, 가드레일 등 다른 환경 검체에서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환기·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병실이 병원 전체를 ‘바이러스 체임버(chamber)’로 만든 형국이다. 보건 당국은 우선 환자가 있던 자리에서 가스를 발생시켜 확산 경로를 확인하고 이보다 입자가 큰 에어로졸을 다시 발생시켜 전파 경로를 확인하는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조사팀이 발견한 또 다른 바이러스 전달자는 의료진이다. 환자가 집중 발생한 병동에 근무한 간호인력들도 확진자로 나왔는데, 이들이 감염된 상태로 병실을 돌면서 병원체를 더욱 퍼뜨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 교수는 “역학조사 결과와 가스 실험 결과, 바이러스 RNA의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펴본 뒤 메르스 변종 발생 여부에 대해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만일 ‘메르스 에어로졸’이 병원 내 먼 곳까지 도달했다면 지금까지 보건 당국이 추적해온 접촉자들이 아닌 단순 방문자들이 바이러스에 노출, 감염됐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보건 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던 이들이 각 지역사회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의료기관 내 유행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
보건 당국이 최초 환자가 입원한 지난달 15일부터 폐쇄된 29일까지 목적에 관계없이 이 병원을 찾은 모든 방문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한 것도 바로 이런 우려 때문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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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06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