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쿠르에 몰리는 젊은 연주자들… 험난한 국제무대 진출 위한 1차 관문

입력 2015-06-08 02:41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지난달 30일(한국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26∼31일 치러진 파이널 결과 임지영은 한국인으로는 처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악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제공
31일 시상식에서 벨기에 마틸데 왕비(아래 사진 앞줄 가운데)가 임지영(앞줄 왼쪽 네 번째)을 비롯한 파이널리스트 12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5년은 세계 클래식계에서 유난히 콩쿠르가 주목받는 해다. 소위 '빅3'으로 불리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년 창설), 폴란드 쇼팽 콩쿠르(1927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1958년)가 잇따라 열리기 때문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바이올린·피아노·성악을 번갈아가며 매년 개최되긴 해도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 4년 주기의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모두 겹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올해 바이올린 부문이 개최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임지영(20)의 우승으로 지난달 31일(이하 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임지영은 한국 연주자로는 처음 3대 콩쿠르 기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피아노만 대상으로 하는 쇼팽 콩쿠르는 지난 4월 예선이 열렸는데 조성진과 문주영 등 우리나라 연주자 9명이 본선(10월 개최) 진출자 84명에 포함됐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6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피아노·바이올린·첼로·성악 등 4개 부문에서 비디오 심사를 통과한 연주자들은 10일 오디션을 치러 예선에 출전하게 된다.

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 연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신예도 있지만 이미 다른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들도 적지 않다. 임지영과 함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12명)에 들었던 이지윤(23)은 지난 3월 영국 윈저 페스티벌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쇼팽 콩쿠르에 나갔다가 아쉽게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선우예권(26)은 2012년 윌리엄 카펠 콩쿠르, 2014년 방돔 프라이즈,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등에서 우승해 ‘콩쿠르 킬러’로 불릴 정도다.

젊은 연주자들이 이처럼 콩쿠르에 몰리는 것은 구미(歐美) 클래식계에서 영향력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계약하기 위해서다.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려면 이들 회사에 소속되어야 하는데 ‘클래식계의 변방’인 한국 연주자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콩쿠르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실제 한국의 대표적 실내악단인 노부스 콰르텟은 2012년 독일 ARD 콩쿠르 2위에 이어 지난해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독일의 유명 매니지먼트사 짐멘아우어와 계약을 맺었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빈도가 급증했다.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하고 영국의 대형 매니지먼트사 아스코나스홀트와 도장을 찍었다. 그를 가르친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5일 “선욱이가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보다 아스코나스홀트와 계약했을 때가 더 기뻤다. 콩쿠르에서 우승해도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하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전문 연주자로 성장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구미 연주자들은 클래식 시장 자체가 크고 스펙트럼이 다양해 콩쿠르가 아니어도 매니지먼트사나 극장의 낙점을 받을 기회가 많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나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신동으로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연주 기회를 얻었다. 콩쿠르에 한 번도 나간 적 없지만 전문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

거장 지휘자나 원로 연주자들의 후원을 받아 국제 클래식 무대에 안착하는 사례도 많다. 한국 연주자 중에도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27)이 콩쿠르에서 그다지 돋보이는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안네 소피 무터의 후원을 받으면서 콘서트 기회를 자주 얻었고 201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유럽문화상 신인 연주자상을 받았다.

반면 연주를 점수나 당락으로 판단하는 콩쿠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무결점의 고난도 테크닉을 중시하다 보니 젊은 연주자들의 개성이나 해석이 종종 무시되는 탓이다. 이샘 목프로덕션 대표는 “연주자와 잘 맞는 콩쿠르가 따로 있다. 메이저 콩쿠르의 권위 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콩쿠르 수상에만 집중해 이후 레퍼토리를 늘리지 못하는 등 커리어 관리에 소홀한 경우도 적지 않다. 폐쇄적인 클래식계에서 흔히 ‘애프터 콘서트’라고 하는 네트워크 구축과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국제무대에서 도태되기도 한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차장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한국 클래식 역사를 새로 쓴 임지영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앞으로 그의 활약 여부가 콩쿠르에만 매달려온 한국 클래식 영재 교육의 성패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