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확산 비상-르포] 그날 감염 의사가 다녀간 곳엔 공포만 남았다

입력 2015-06-06 02:35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가 서울 강남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소식이 퍼진 5일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 상가에 발길이 끊겼다.
그가 다녀갔다는 장지동 가든파이브의 한 음식점에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주공1단지 안에 있는 서울개원초등학교 정문에는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었다.
아이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뛰어다녀야 할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었다. 병아리 삐악삐악을 외치던 유치원도 굳게 닫힌 채 인기척이 없었다. 여름 초입의 단비는 총총걸음하는 주민들의 불안한 눈빛과 맞물려 싱그럽기보단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불안이 빚어낸 적막=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35번 환자)가 재건축조합 총회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5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아파트는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124개동 5040가구가 밀집한 초대형 단지지만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활기가 넘쳤던 단지 상가엔 주민들이 메르스 공포로 바깥출입을 삼갔기 때문인지 주민보다 취재진이 더 많아 보였다.

단지 안에 있는 개포중학교, 개원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은 이날부터 휴업에 돌입했다. 개원초 정문에는 ‘메르스로 인해 6월 5일(금)∼6월 8일(월) 휴업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교장 명의 안내문이 나붙었다.

총회에 참석했던 조합원 주민들은 보건 당국으로부터 자택 격리 통보를 받았다. 자치회장 박종대(66)씨도 지난 4일 밤늦게 보건 당국의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지난 30일 양재동 L타워에서 열린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다. 그는 오후 7시3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고 했다. 의사가 현장을 방문했다고 서울시가 밝힌 시간(오후 7시∼7시30분)과 아슬아슬하게 겹친다. 총회가 열린 연회장에 자리가 부족해 바깥쪽 로비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박씨는 보건 당국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다짜고짜 격리하라고만 하면 어떡하나. 생활이나 경제활동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야 납득이 되지”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빠서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확진 환자와 같은 공간에 머물렀지만 감염 우려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그는 “그런 장소에서는 모르는 사람들하고 얘기하기 어렵다”며 “나도 로비에서 아는 사람들하고만 얘기했다. 듣자하니 메르스는 가까이 있어야 걸린다던데”라고 했다. 그러나 메스르 우려 탓에 이 단지는 9일 열기로 했던 입주자대표회의 임시총회를 연기했다. 관리소장을 새로 뽑는 모임이었다.

◇당국 무능에 분통=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조모(51)씨는 마스크를 쓰고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어제부터 손님들이 많이 요구해서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회에 다녀온 조합원 유모(58·여)씨와 통화를 했다. 유씨도 보건 당국의 자택 격리 통보를 받고 두문불출하는 중이었다. 그는 그 의사와 마주쳤느냐는 물음에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데 마주쳤는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되물었다. 가족들은 정상적으로 출근했다고 전했다. 유씨는 “좁은 집안에 같이 있는데 어떻게 따로 격리를 하냐고 보건 당국에 물어봤지. 그랬더니 밥을 따로 먹으면 괜찮다고 하고 가족에 대해선 별말이 없었다”고 했다.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도 역력했다. 단지 상가 내 부동산을 운영하는 최모(63)씨는 “어제 발표 때문에 이제 한동안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사람들이 통 나다니질 않으니 주민들 생각을 들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마침 부동산에 짜장면 배달을 온 중국집 사장은 “사람들이 다니질 않아. 장사도 안 돼”라며 그릇을 놓고 나갔다.

의사가 다녀갔던 L타워와 장지동 가든파이브도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L타워는 재건축조합 총회 행사를 담당했던 직원 10명에게 이날부터 2주 동안 출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전 직원을 상대로 발열 유무를 점검했지만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아침부터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의 예약 취소 문의가 쏟아졌다.

가든파이브는 엘리베이터에 ‘메르스와 관련해 안전합니다. 건물 전체에 항바이러스 소독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게시했다. 그러나 고객과 입주자들의 불안은 컸다. 옆 동에서 근무하는 김모(38)씨는 의사가 들렀다는 식당 앞에서 “병원 이름은 공개 안 하면서 가게 이름은 공개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따지면 의사 얼굴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언성을 높였다.

글·사진=김미나 홍석호 김판 신훈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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